추석연휴 기간 쏟아진 미국 뉴욕발 뉴스들은 한가위 선물만큼이나 풍성하고 희망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번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머지않아 2차 정상회담의 최종 준비를 하기 위해 평양에 가게 될 것”이라며 실무 준비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쟁의 망령을 대담하고 새로운 평화추구로 대체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완전 파괴’를 경고하던 1년 전과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으로 ‘톱다운’ 방식의 새 합의를 도출해 비핵화를 이끌어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한·미 정상회담과 유엔총회를 통해 재확인된 것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한·미 정상회담→북·미 2차 정상회담의 흐름은 지난 몇달간 정체 상태였던 한반도 대전환 여정의 힘찬 재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한반도 대전환의 밑그림이 완성되기를 희망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리용호 북한 위무상이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캡쳐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북한이 원하고 있는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대북 제재 계속’을 거듭 확인한 점을 보면 성급한 낙관론은 경계할 일이다. 청와대도 “두 정상이 종전선언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선에서 회담 결과를 전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보여주는 움직임은 많다. 폼페이오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특정한 시설들, 특정한 무기 시스템들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9·19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것 이상의 비핵화 추가조치들이 꽤 구체적인 수준에서 협의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25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 간의 ‘뉴욕회동’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올릴 ‘빅딜’ 메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 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연내 종전선언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은 일련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서 나온 언급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정세는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퍼부을 듯한 짙은 먹구름 속에 휩싸여 있었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취소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개소일정도 미뤄지는 등 남북·북미 관계 모두 난관에 처해 있었다.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김정은이 ‘친서외교’로 소통을 유지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중재노력이 북·미 간 협상 모멘텀을 살려낸 덕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남북 및 북·미 3각 채널이 앞으로도 작동될 것이란 점이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미국 외교협회 등 주최로 열린 연설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거듭 강조했고,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 방안도 예시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제재완화를 한 뒤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면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된다”며 미국이 제재완화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종전선언 하나에도 인색했던 미국을 상대로 제재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지원, 예술단 교류 같은 목록을 꺼내놓는 것은 시기상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과감한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도 ‘통 큰’ 상응조치로 화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외교협상이다. 한반도 대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려면 남·북·미 모두 양보와 상응조치로 ‘윈윈’하는 거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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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까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북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 70년간 적대역사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하면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일정에 대한 구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더 이상 의심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비핵화 의지 표명이라고 본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촉진제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남북이 이달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개최 합의는 이미 이뤄졌고 이번에 일정이 확정된 것이지만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다는 징표로 충분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세번째 정상회담이 군사적 긴장 완화 등 신뢰구축을 구체화하도록 남북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최대 과제는 역시 비핵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 인도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델리 _ AFP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제시한 비핵화 시간표는 지난달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거론한 ‘1년 내 비핵화’와는 1년가량 차이가 있다. 하지만 ‘1년 내 비핵화’는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답한 형식이어서 동일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번 시간표는 비핵화에 소요되는 시간과 검증 등 여러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현실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임기는 2021년 1월까지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제시했던 비핵화 시간표와도 일치한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북한 매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조선중앙통신은 6일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표현을 통해 진정성을 거듭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에 나서야 비핵화 조치를 하겠다는 취지의 종전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을 문제 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틀에서 김 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지 않고 이 점만을 떼어내 문제시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도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의심하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특사단은 전했다. “여러 차례 분명하게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실천해 왔는데 이를 선의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에둘러 표시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문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게 됐다.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비핵화 진전을 위한 남북 협력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실천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토대로 북·미 협상을 재가동시키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이뤄지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4일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북·미를 대표하는 수석협상가 역할을 요청한 바 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김 위원장에 감사한다. 우리는 잘해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약화와 무관하다’고 직접 밝히며 미국 일각의 의심 해소에 나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길 바란다. 연기했던 폼페이오 방북부터 재개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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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협상을 다루는 분석틀 중에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라는 것이 있다. 국제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국가 간 협상을 국가를 대표하는 협상 실무진 간의 협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실무진 간에 주고받기를 잘하여 서로 합의를 이루면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국가 간 협상은 이렇게 단선적으로 협상 실무진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의 협상 실무진끼리 아무리 합리적인 타결을 보아도 그 타결된 안을 각기 국내의 이해 당사자에게 가져가 설득하지 못하면 그 안은 죽어버리고 만다. 특히 협상된 내용이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거나, 국내 여론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국내의 설득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국제와 국내의 양면에서 동시에 접점을 찾아야 협상이 타결된다는 의미에서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 간 협상을 양면게임이라고 부른다.

이제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발언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의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까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AP연합뉴스

 

비핵화 협상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양국 간에 이루어지는 협상이다. 그리고 양국이 아직까지 전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최대 전쟁능력인 핵을 포기하는 협상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패전에 해당하는 무장해제라고 볼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해 온 북한의 군부와 인민들이 미국 앞에서 무장해제와 패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및 남한과 대결적 전쟁상태가 지속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리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했다하더라도 이를 북한 국내에서 실행에 옮길 명분과 설득논리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전쟁상태가 종식되고 미국, 그리고 남한과의 정상적인 국가관계가 성립된다는 확실한 신뢰가 있어야 북한이 핵심전력인 핵을 포기할 명분이 생긴다. 전쟁용으로 개발한 핵을 평화적 환경이 도래했으므로 포기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을 경제건설에 투입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전이 국내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북한은 의미 있는 비핵화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과 한국이 우선적으로 ‘종전선언’을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도 국내적으로 이미 악마화되어 있는 북한에 선뜻 ‘종전’이라는 선물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종전을 선언했는데 북한이 비핵화를 질질 끌면서 제재의 완화만을 노린다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북한에 농락당하는 꼴이 된다. 거기다가 종전과 함께 정전협정이 사라지면 유엔사령부의 존재 및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북한이 문제 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한·미동맹의 문제까지 엮이게 되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남한과 미국의 매우 급격한 변동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안보적 우려 역시 존재한다.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다는 생각에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과 남한의 국내적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회동을 하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하지만 양면게임의 성격상, 그리고 전쟁용이라는 북핵의 성격상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이다. 북한도 북한 억류 미국인의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그리고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및 ICBM 조립시설 해체라는 초기조치 등을 보여주면서 미국에 종전선언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종전선언을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전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다. 즉 종전도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제 종전이라는 과정의 시작을 알린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이라는 과정이 시작되면 전쟁용 무기인 핵을 해체하는 과정도 시작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도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조치들을 취해감에 따라 신뢰가 쌓이고, 궁극적으로는 종전 과정의 끝을 선언하면서 바로 평화체제 수립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종전이 시작되었으므로 김정은 위원장은 핵폐기의 명분이 생기고, 종전이 완벽하게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국내의 우려도 상당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전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 종전 과정의 끝을 알리는 선언, 그리고 평화체제 및 관계정상화를 향한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외교가 종전선언을 놓고 미국의 선처만을 호소할 수는 없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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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6~7일 평양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드러났다.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 문제에서 합의 도출을 추진했으나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고수함으로써 원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으로 열린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핵심 사안인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비핵화 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 대해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인 성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언론을 중심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마련하지 못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회담 직후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것도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없다.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회담 전략의 의도도 있겠지만 비핵화 방식에 대해 북·미의 입장 차가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급적 빨리 비핵화 달성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염원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미는 비핵화 협상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원칙적 합의를 하고 이어 고위급과 실무그룹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정상들의 추인을 받아 이행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 로드맵 마련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협상은 이견을 좁히고 양보함으로써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양측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이견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를 핵무기와 미사일을 망라해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서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신봉하는 CVID가 과연 유일무이한 방안인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해 북한의 거부감이 심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에 북한도 구체적인 자체 안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게 어느 쪽이 낸 방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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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특히 한국에서 한반도의 미래와 장기적 평화 전망에 대한 전례 없는 낙관주의를 촉발했다. 6개월 전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전쟁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고, 남북과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에 대한 희망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상 첫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생각과 평정심이 필요하다.

 

세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북한과 바깥 세계 간의 더 큰 변화를 막을 수 있다. 첫째, 북한이 정의하는 비핵화와 한국·미국의 비핵화 사이에는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다. 둘째, 관련 국가들의 기대와 (정의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에 대한 (시간표는 말할 것도 없고) 합의된 절차나 로드맵이 없다. 셋째,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핵합의의 필요조건은 정보 공개와 북한에 대한 접근, 국가 주권에 대한 양보를 포함하며 이는 북한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경제클럽’ 오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_ AP연합뉴스

 

비핵화 정의의 간격은 단순한 의미론의 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주장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은 채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같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고, 그 의미를 정의하는 일은 미국과 북한에 맡겨두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이 무기 프로그램들을 종결시키는 데 동의했다고 믿지 않는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 있는 핵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북한은 모든 협상은 군축에 관한 것이지 비핵화에 관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이 근본적인 문제를 애매하게 만들고 무시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는 남북 간 의제 중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판문점선언의 끝부분에 배치됐고 거의 지나가듯이 언급됐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핵 문제 취급은 더 걱정스러웠다.

 

성명은 애매하고 희망적인 목표로 후퇴했다. 2005년 9·19 6자회담 공동성명이나 기존 북·미 간 핵 합의보다 훨씬 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담기지 못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이 선언의 실제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어떤 결정적이고 명확한 언어에도 동의하는 것을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 선언에서 이 이슈에 대해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면, 북한의 핵무기를 소유하려는 결심과 미국이나 한국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 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에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의지를 전달해왔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또한 미국은 앞으로 2년 반 안에 주요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시간표와 로드맵 관련 문제들이 명확해지고, 구속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을 가속화하고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몇 주와 몇 개월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이런 큰 목표들을 진전시켰는지,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약속이 충분한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도 존재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와는 별개의 정치적 필요와 목표들이 있고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세계와의 끊임없는 적개심을 수정하지 않고도 자신의 의제들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점이다. 두 대통령들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번영하고 두 나라와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다. 미국은 북한에 미국의 비적대적인 의도를 확신시키기 위해 당면한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미래에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도 가능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힌트를 줬다. 지난 65년간 전쟁을 억지해 온 (한·미) 안보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들도 암시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있어 전례 없는 돌파구를 찾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정상은 김 위원장이 핵 없는 미래를 위한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두 정상이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증 없는 가정을 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조너선 폴락 |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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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찬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북·미 정상회담 사전협상을 진두 지휘해온 폼페이오가 북한에 대해 ‘번영’이란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폼페이오의 방북에서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에 도달하면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제재 완화와 경제적 보상을 하는 방안이 북·미 간에 심도 있게 협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이 비핵화 행동에 나선 일정 단계에서 국제기구의 대북 융자나 외국기업의 대북 투자를 막아온 미국 국내법령이나 독자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그동안 북·미대화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한 대북 체제 보장과 평화체제 구축 방안은 자주 거론돼 왔지만 경제적 보상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올 들어 조성된 한반도 대화국면에서 핵심 쟁점은 비핵화이지만, 북한으로서는 비핵화를 지렛대로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경제발전을 위한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것이 주요 목표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폼페이오의 ‘북한 번영을 위한 협력’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발걸음을 가볍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한의 움직임도 고무적이다. 북한은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방식으로 폐쇄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으며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및 남한 기자들을 초청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북한은 국제 기자단을 위해 원산에 숙소와 기자센터를 설치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특별전용열차를 편성하는 등 취재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을 폐쇄할 때 대외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달 앞두고 양측이 발신하는 긍정적 신호들은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양측의 긍정적 조치와 언급이 ‘불가역적인’ 약속으로 굳어지도록 문재인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은 그래서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 직전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이 참석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다면 최선의 조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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