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율은 79.47%. 10명 중 8명이 투표소를 찾았다. 프랑스 유권자들의 강한 정치참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같은 참여의식은 제도교육이 아닌, 부모세대의 높은 정치참여 태도가 자연스럽게 자녀세대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지난 3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서 정치를 ‘즐긴다’는 인상마저 줬다.


이날 오후 파리 4대학(소르본) 앞에서 만난 신디아(24·학생)는 “정치는 삶”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부모가 투표소에 갈 때 함께 가고, 다녀온 뒤 선거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정치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보니 각종 사회문제에 학생들이 단결해 항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6년 프랑스 대학생 수십만명은 정부가 청년층의 고용과 해고를 유연하게 만들려는 ‘최초고용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두 달간 노동조합들과 함께 이어가면서 결국 정책을 폐기시킨 경험이 있다. 신디아는 “프랑스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연대하는 힘이 약했다. 프랑스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최초고용계약(CPE)'의 철회를 요구하는 프랑스 청년들이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향DB)


대학생 마테오(22)는 “어릴 때 부모님이 친구들과 정치문제로 토론할 때 무관심한 척 옆에서 놀면서도 어떤 이야기인지 듣곤 했다”면서 “프랑스 중등교육 과정에는 정치참여를 교육하는 과정은 없지만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민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오레이아(20)는 “15살 때 부모님들이 ‘선거는 꼭 해야 하는 거다. 투표소까지 가서 기권표를 행사하더라도 꼭 참여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참여정치를 몸에 익힌 프랑스 파리의 거리에서는 ‘투표참여’ 독려 포스터는 찾아볼 수 없다. 길에 붙은 각 정당의 선거포스터도 요란하지 않다. 다양한 색깔의 커다란 플래카드도 보이지 않는다. 눈썰미가 나쁘다면 프랑스가 대선기간이라는 것조차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삶 속에 이미 들어온 정치를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투표장으로 향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두 명의 후보를 비교평가하는 대선후보 TV토론은 유권자의 절반인 2000만명이 시청했다.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날카로운 정책 비교평가로 이어진다. 대학생 엘레오노(21)는 “TV토론은 후보 각자가 자신의 공약을 지지자들뿐만 아닌 모든 국민 앞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라며 “후보 간 상호 비방이 격렬했던 이번 토론은 기대 이하였다”고 말했다. 대학생 브루노(25)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는 프랑스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지만, 니콜라 사르코지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 모두 민감사안인 탓에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차 투표율이 높았던 이유 중의 하나로 극우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리가 꼽히기도 한다. 2002년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한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던 프랑스 유권자들이 그의 딸 마린 르펜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껴 투표소로 향했다는 것이다. 한 남학생은 “르펜이 그럼에도 이번에 18%나 되는 지지율을 얻은 것은 상당히 충격이었다”면서 “이번 대선은 올랑드나 사르코지 둘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보다 ‘최악은 피하기 위해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라는 얘기를 친구들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제위기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주류 정치인들에게 실망하면서도 프랑스 유권자들은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변화 가능성을 굳게 믿는 셈이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 (경향DB)


이 같은 프랑스의 높은 정치참여는 불안했던 정치역사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1789년 혁명을 시작으로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체제변화를 거쳤고 1960년대에는 알제리전쟁의 여파로 체제불안을 겪었다. 보통사람들은 사회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보를 공유했고, 이것이 유럽 내에서도 정치성향이 두드러진다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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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높은 임대료 앞세워 기존 가게들 내몰아” 상인들 비판 목소리



파리 중심가 개선문부터 시원하게 뻗은 가로수길인 샹젤리제는 프랑스인들이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길이라고 손꼽는 프랑스의 자존심 같은 곳이다. 하지만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전 세계 다국적 브랜드들의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갭, 자라, H&M처럼 세계 여느 대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중저가 의류브랜드 간판들이 즐비하다. 대형 음반매장 버진 메가스토어가 철수한 노른자위 자리에 애플이 진출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1978년부터 샹젤리제 현재 자리를 34년째 지켜온 간이매점 주인 모하메드(50)는 가게 앞 매장들의 변천사를 쭉 읊었다. “디즈니 매장이 들어선 저 자리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 은행이 있었다. 바로 옆 자라 매장은 전에는 맥도널드, 그 전엔 프랑스 구두가게였다. 저기 모퉁이를 돌아가면 레바논식 캬바레가 있었고….” 그는 “옛날엔 산책할 때도 안전했지만 요즘은 동냥꾼에 소매치기가 극성”이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1914년부터 샹젤리제에 자리해온 프랑스 화장품업체 겔랑의 매장직원 나디아(63)는 평생 본 거리가 변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1960년대만 해도 샹젤리제에는 고급매장 사이를 마치 오페라 극장에 가듯 차려입은 사람들이 거닐었죠. 하지만 20년 전쯤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가 들어오고, 10년 전부터는 다국적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관광객들이 몰리고, 치솟는 세를 못견딘 기존 가게들이 떠났거든요.” 겔랑 매장 인근의 중저가 화장품 매장 ‘세포라’는 개당 13유로(약 1만9000원)쯤 하는 파운데이션 등을 사려는 여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샹젤리제는 프랑스의 오늘을 집약하는 곳이다. 일자리 부족과 빈부격차가 지난 10년간 심화되면서 사람들의 구매력은 줄어들었고, 그에 맞춰 저가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했다. 



프랑스 파리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파리 시민들이 2일 세계적으로 각광받은 스페인 의류 브랜드 자라와 미국 월트디즈니 기념품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파리 _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프랑스 통계청(INSEE)은 프랑스의 실업률이 11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1999년 이후 최고치인 10%를 기록하고, 구매력도 2007년 이후 약화됐다고 최근 집계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예전에 일요일에 문을 여는 가게는 아랍인 상점 정도였지만, 요즘은 프랑스인들이 운영하는 식료품점 등도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마스터 셰프> 같은 요리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사람들이 돈을 아끼려 외식 대신 재료를 구입해 직접 요리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국내 정책 가운데 하나가 ‘구매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구매력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을 사르코지 대통령이 집권한 뒤 신자유주의 기조가 상당히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프랑스 민주단일노조 쉬드(SUD) 소속 체신노조(PTT)의 파트릭 아케르망 중앙지부장은 2일 인터뷰에서 “사르코지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대기업 일자리를 잡겠다면서 기업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간접세인 소비세는 올려서 결국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며 “1960년대 말 프랑스가 도입한 최저임금제(SMIC)도 일자리를 만들려면 고용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폐지를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가 유럽연합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프랑스 좌·우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파업 횟수를 사안에 따라 지정하는 유럽연합의 새 정책 추진 내용은 영락없이 기업가 편의적이다. 니콜라 갈레피드 쉬드 체신노조연맹 대표는 “만약 프랑스 경제가 더 악화된다면 유럽연합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극우파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에 대한 지지도가 더욱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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