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 사무총장 등 세계 각국 지도자의 반대에도 파리 기후변화협정 무력화를 기정사실화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전 지구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임에 틀림없다. 또한 전 세계 국가들이 참여해 만든 국제협약을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무시하는 폭력적인 행태나 다름없는 일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트럼프의 이런 태도는 어떤 변명으로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전 지구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은 이날부터 파리기후변화협정의 이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대선 전후로 파리협정을 부정한다고 공언해왔다. 그는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할 만큼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불신했다. 이런 개인적 인식 외에 국익을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에 근거해 협정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판단도 기후협정을 부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미 정부도 인정한 것이다. 미 국방부는 기후변화를 ‘위협 증폭기’라고 했고, 국가정보위원회는 “향후 20년 동안 정치·경제·사회·안보에 직간접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협정 탈퇴는 지도력 실추나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어 미국 안에서도 논란이 됐다. 아무리 국익이 중요하다해도 동맹국이나 파트너와 협력해야 미국 우선주의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협정을 탈퇴하면 미국 입장에서도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트럼프가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중국에 이어 세계 온실가스 배출 2위인 미국이 발을 뺀다면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무엇보다 파리협정은 유명무실해진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협정을 준수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하고, 나아가 ‘탈퇴 도미노’를 자극할 수도 있다. 다행히 중국과 유럽연합이 미국의 탈퇴와 상관없이 파리협정의 효과적인 이행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2일 발표하기로 했다. 이 약속이라도 성실히 이행하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는 일이 절실하다.

 

세계는 이제 미국 없이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청정에너지를 개발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언젠가 다시 미국을 협정에 복귀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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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유럽 역사는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간 견제와 균형의 역사였다. 네 나라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세력 균형자 노릇을 했다. 독일은 공포이자 비난의 대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강력한 독일도, 분열된 독일도 원치 않았다. 어떤 경우든 유럽의 세력 균형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독일 입장으로서는 영향력을 행사해도, 하지 않아도 욕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이 국제관계 속에서 형성된 ‘독일 딜레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뮌헨에서 열린 기민·기사당 합동 행사에 참가해 연설 도중 맥주잔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뮌헨 _ AF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 딜레마’ 속으로 뛰어들려는 걸까. 메르켈이 지난 28일 “유럽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한 발언을 보며 든 생각이다. 메르켈은 맥주파티 형식의 정당행사에서 “이것이 지난 며칠간 경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및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협약 5조 준수를 거부하고 파리기후협정을 반대한 데 대한 불만으로 해석됐다. 파장이 컸다. 유럽과 미국의 결별선언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은 “분수령”이라고 표현했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기드온 라흐만은 4개월여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70년 된 대서양동맹에 의문을 품게 한 점 등을 들어 “메르켈의 실수”라고 했다.

 

메르켈 측은 다음날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이 가라앉을지 불투명하다. 분명한 것은 그의 발언이 맥주를 마시며 늘어놓을 넋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정세를 분석한 끝에 내린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 영국은 지난해 유럽연합 탈퇴로 대륙에서 멀어졌다. 풋내기 정부 프랑스는 독일과 손잡고 러시아에 대항할 태세다. 미국은 유럽을 버리려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의 몸속에서 세력 균형자로 나서야 한다는 욕구가 일렁이지 않을까.

 

실제로 유럽에서 독일의 영향력에 비례해 그의 위상은 높아가고 있다. 오는 가을이면 4선 총리도 가능하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나, ‘라인강의 기적’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에 견줄 만하다. 메르켈의 발언은 주워담을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나머지 국가 지도자들의 견제가 불을 보듯 뻔하다. ‘메르켈 딜레마’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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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는 9일간 중동 및 유럽 5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28일 트위터에 “이번 순방은 미국에 큰 성공이었다”고 썼다. 트럼프의 첫 순방은 미국의 핵심이익인 중동과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 국가에 맞춰진 만큼 대외정책의 근간인 미국 우선주의와 유럽 동맹국과의 협력관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첫 순방은 그의 평가처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익을 앞세운 나머지 미국과 유럽 간 동맹관계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킨 점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중동 방문은 큰 이변 없이 순조로웠다. 이란 핵무장 반대, 이슬람국가(IS) 격퇴 등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보인 행보는 달랐다. 유럽 안보나 러시아 위협은 안중에 없이 국익에만 치중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협약 5조 준수 거부, 방위비 분담금 확대 요구는 회원국의 분노를 샀다. 1949년 나토 창설 이후 정상회의에서 협약 5조 준수를 거부하고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트럼프 관점에서 미국의 안보 우산에 기대고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나토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파리기후협정을 유일하게 반대하고,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독일을 “매우 나쁘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뮌헨에서 열린 기민·기사당 합동 행사에 참가해 연설 도중 맥주잔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뮌헨 _ AFP연합뉴스

 

미국 안에서는 트럼프의 유럽 순방을 두고 고립주의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자 미국의 리더십을 재확인해 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이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국익 우선주의가 장기적으로는 전통적인 동맹국 관계도 해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유럽 최강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G7 회의를 마친 뒤 “미국은 독일이나 유럽에 믿을 만한 파트너가 아니다”라고 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브렉시트와 미국 우선주의 속에서 미국과 유럽 동맹관계를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됐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 우선주의가 계속된다면 미국 주도로 구축된 유럽 질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미국과 세계에 불확실성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제협력과 번영의 기회도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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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의 대 한반도 외교안보 정책과 그 집행 과정을 종잡을 수 없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동안 한반도 정책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지만 그 내용은 오리무중이다. 트럼프가 최우선 과제로 꼽은 북핵 문제를 놓고 미·중 정상이 마주 앉았는데도 정리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을 집행하는 팀은 엉망진창 그 자체다. 외교사령탑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실세 측근들에게 밀려 존재감조차 없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낙마했고, 어제는 캐슬린 맥팔런드 부보좌관도 자리를 내놨다. 불확실성이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9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헬기인 ‘마린 원’을 타고 워싱턴의 백악관에 도착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미국은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있자 호주로 향하던 미 핵항모 칼빈슨호의 항로를 한반도로 돌리고 전략자산을 잇따라 투입하고 있다. 군사 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라는 트럼프의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북한이 6차 핵실험 등을 강행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한국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면서 한국을 주요 당사자로 지칭한 적이 없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일본 하고만 상의했다. 한국 외교안보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화로 “사드에 대한 미국 입장을 중국에 전달했다”고 밝힌 것에 안도하는 눈치다. 그러나 20분간 통화하면서 얼마나 밀도 있는 협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한국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할 채널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이 안갯속일수록 한국이 중심을 잡고 대응을 주도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에 편승할 생각은 그만두고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 대북 압박과 함께 북한과의 대화도 촉구해야 한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국이라면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북한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대선후보들도 안보불안을 씻을 수 있는 외교·안보 구상을 밝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미국과 중국을 향해 할 말을 하면서 한반도 안보를 지키는 방안을 내놓을 때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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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를 골자로 한 오바마의 청정전력계획을 무산시키고 국유지 내 석탄 채굴을 허용해준 것이다. 또한 석유 및 석탄산업의 메탄가스 배출량의 기준도 완화했다. 이로써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32%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8% 높인다는 오바마 전임 행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은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계 2대 탄소배출국인 중국과 미국까지 참여해서 천신만고 끝에 마련한 2015년 12월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자체가 어그러질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환경청 청사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규제한 전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광산 노동자들이 둘러서서 박수를 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서명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미국 내 석탄산업을 되살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미국 우선주의의 발상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양산업 생명만 연장해주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미국의 첨단 에너지 분야에서 생긴 신규 일자리(220만개)는 화석연료 고용인력(110만명)의 두 배에 이른다는 통계가 잘 말해준다. 기후변화 대응정책이 경제성장을 막는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미국은 2015년 탄소배출량을 2008년 대비 9.5% 줄이면서도 10% 이상의 경제성장 효과를 거뒀다. 또 지난해 9월의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71%는 미국 정부가 지구온난화 대책에 나서야 한다고 응답했다. 트럼프의 반환경 행보가 미국 내 여론의 흐름까지 거스르는 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트럼프가 화석연료 억만장자들의 배만 불려준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기후변화의 심상치 않은 흐름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100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4도 이상 높아진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한’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인류의 삶을 지켜줄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평균기온 상승폭이 이미 1.5도에 근접했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당장 화석연료를 폐기하고 고강도 국제합의를 실행해야 겨우 1.5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기고한 글의 제목은 ‘청정에너지 개발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도 기후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는 오바마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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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를 갖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5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핵기폭장치와 기초적인 핵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북핵 불용’은 한·미뿐 아니라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가 유지하고 있는 기본 입장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한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북핵 불용’이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다.

 

가끔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정치인들을 본다. 이 말은 형용 모순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북한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므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이유도 없고 협상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인정해야 할 것은 대화와 협상의 상대로서 북한의 국가적 실체이지 핵보유국 지위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팜비치 _ AFP연합뉴스

 

이 대목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명확해진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느슨해지면 그것이 곧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한 제재는 절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에 지속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다. 국제법적 지위를 갖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가 줄줄이 이어지고 각국의 독자 제재도 날로 강화되고 있음에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북 제재의 효용성은 심하게 의심받고 있다. 중국이 뒷문을 열어주고 제재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기 때문에 대북 제재는 소용이 없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제재의 효과는 분명히 있다. 제재가 없었다면 북한은 일찌감치 핵강국이 됐을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에 착수한 지 수십년이 지나도록 아직 완전한 핵억지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속적인 제재 강화로 핵관련 장비·기술 이전을 차단하고 경제적·정치적 제약을 가해온 결과다. 제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무줄처럼 조여오는 특성이 있다. 빈틈을 찾아가면서 견뎌낼 수는 있지만 벗어날 수는 없다. 특히 북한처럼 전방위적 제재를 받고 있는 상태가 유지된다면 핵무기를 아무리 많이 가져도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의지가 약화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은 북핵 당사국인 한국의 책무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재가 북핵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손익계산을 따져 핵무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협상이다. 제재는 상대를 대화 테이블로 끌고 나오고 유리한 입지에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협상을 염두에 두지 않은 맹목적 제재로 핵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환상이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고 말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부터 대북 선제타격, 전술핵 재배치, 미·중의 전략적 결정에 의한 해결 등등을 모두 모색한 뒤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다. 테이블에 올려진 모든 옵션에서 불가능한 것을 하나씩 제외시키는 ‘네거티브 셀렉션’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현실적인 대안이 남을 수밖에 없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국제비확산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없고 막대한 인명피해가 따르는 전면전을 감수하고 선제타격을 선택할 수도 없다. 만일 미국이 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한다면 국제사회와 한국이 이를 뜯어말려야 한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제재와 협상의 병행 추진’이라는 기존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굳이 차별화를 꾀한다면 ‘더 강력한 제재와 더 적극적인 협상’ 정도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줄 ‘실버 불릿’은 없다. 지금까지의 북핵 접근법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제재와 협상 중 하나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한 탓이며 북핵 당사국 간의 일치된 대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력과 인내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합리적 해결책은 ‘제재와 협상’이라는 상식적이고 약간은 진부해 보이는 틀 안에만 있다. 조만간 들어설 한국의 새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차분하고 인내심 있게 북핵 문제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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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상하는 국방력 강화가 세계 정세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강한 미군’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예산을 증액하는가 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중동,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 증강은 러시아, 중국과의 갈등을 첨예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와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국방비 6030억달러(684조1035억원)를 포함한 2018년 회계연도 예산안 초안을 공개했다. 이 국방예산은 전년도보다 10% 증액한 액수다. 이는 함정과 전투기 개발, 페르시아만이나 남중국해 등 핵심 항로나 해상 요충지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단결과 ‘통합’을 강조했고, 취임 연설 때보다 미국의 긍정적인 비전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나토든, 중동이든, 태평양이든 파트너들이 전략적, 군사적 작전 양 측면에서 직접적이고 의미 있는 역할을 맡기를 바란다”면서 “모두 공정한 몫의 비용(방위비)을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군 자체 군사비와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이 늘어난다면 전체 전쟁 예산은 더 큰 규모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당장 그 파장 안에 놓이게 됐다. 아·태 지역 미국의 최대 군사 협력국 일본도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등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사상 최대치인 5조1251억엔(51조4580억원)의 국방예산을 배정했다. 이에 맞서는 중국도 오는 5일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올해 군사비 증액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도미노 같은 군비 확대 경쟁에다 북한 김정남 피살 이후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 가능성,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강행 등이 예상돼 한반도 내 위험 지수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은 그 불안한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다. 주변에서 격랑이 일면 한반도에 닥칠 파고는 커진다. 한국 정부는 덩달아 뛰기보다는 정세를 면밀하게 관측하고 섬세하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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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난민의 미국 입국을 120일간 중단하고, 이라크와 이란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금지하는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맞서 미국 연방법원들이 공항에서 발이 묶인 입국자의 강제송환 금지 결정을 잇따라 내리고, 국내외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발이 거세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슬림을 금지하는 게 아니다. 유럽에서 (난민 유입과 테러 빈발 등)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며 행정명령을 고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조치에 서명한 데 이어 무슬림 입국 거부까지 트럼프의 고립정책이 강도높고 신속하게 실행되면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수천명의 시위대가 2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톰브래들리국제공항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히틀러로 그린 깃발 등을 들고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AFP연합뉴스

트럼프의 행정명령 파장은 단순한 무슬림의 국내 입국 금지에 그치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온 동맹을 한순간에 배제함은 물론 적으로 돌린 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제안보 질서는 미국이 수십년 전부터 동맹들에 한 약속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약속들이 자국에 불리하다고 하루아침에 파기하는 것은 지구촌을 유지해온 평화의 근간을 흔드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한 것은 과거의 선택이지만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당장 이를 흔들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또한 이민정책으로 나라를 발전시켜온 미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다. 미국은 자본과 노동의 국경을 넘은 자유로운 이동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GE와 JP모건체이스 등 미국 대기업들과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 그 증거다. 실리콘밸리는 물론 미국의 과학계는 전 세계에서 우수인력을 공급받은 덕에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차별 철폐의 길을 걸어온 인류의 흐름과 보편적 가치에도 어긋난다. 미국 혼자 편해지자고 전 세계를 빈곤과 폭력에 내모는 반이민 행정명령은 거두어야 한다.

 

트럼프의 행정명령 발동 방식도 적이 우려스럽다. 미국은 이라크 등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중동 전문가들의 조언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향후 중국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할 경우 그 파장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으로선 끔찍한 일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테러리스트들의 명분을 강화해주는 역효과만 낼 것이다. 이런 막무가내식 행동은 세계의 지도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번 조치를 환영한 것은 유럽의 극우정당들뿐이라는 사실을 트럼프는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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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의 본색을 예상보다 빨리, 더 강력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무역협정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걷어찬 것이다. 전날 백악관 참모진 시무식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추진을 밝힌 데 이어 자국 위주의 보호무역주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정도로 강력하게 보호무역주의를 드러낼지 대부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이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발을 빼고 보호무역주의로 나가면서 세계무역 질서는 대격변의 전환기를 맞게 됐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세계시장의 위축, 미·중 간 주도권 경쟁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25일 (출처: 경향신문DB)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외국의 싼 제품이 물 밀듯 들어와 미국의 일자리 감소, 부채 증가, 중산층 붕괴를 일으켰다고 본다. 따라서 공장을 불러들여 일자리를 늘리고 이를 통해 성장, 궁극엔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언제든 주먹을 휘두를 준비도 돼 있다는 뜻이다. 조약이나 협상을 무효화하거나 재협상을 벌여 유리하게 바꾸고, 말을 듣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물려 굴복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명목상 ‘미국 우선주의’이지만 힘의 우위를 통해 패권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실패한 무역협정을 거부하고, 미국에 해가 되는 국가에는 철퇴를 내릴 것”이라는 백악관의 경고는 노골적이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의 간판을 내건 이상 한국에 닥칠 위협은 시간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선기간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 내 일자리 10만개가 줄어들고 무역적자도 두 배로 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13.4%,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23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재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을 중국 등과 함께 환율조작국으로 몰아갈 우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룰 브레이크’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기업들은 앞으로 보호무역주의의 높은 장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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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그제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선언하며 국가주의를 강조했다. 도덕이 아닌 힘의 과시, 외국인 혐오 등 저강도 파시즘 색채도 숨기지 않았다. 세계 경찰을 자임해온 미국의 새 출발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은 착잡하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살육되고 있다”는 살벌한 언사까지 동원하며 그 주체로 기성 정치권, 야당 등 반대파를 겨눴다. 국민을 동지와 적으로 나누는 ‘두 국민 전략’을 재임 기간에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공존과 자유, 평등, 정의 등 미국 대통령이 단골로 제시하던 가치 대신 자국 이기주의로 연설문을 채웠다.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미국 우선 외교정책, 일자리 창출과 성장, 미군의 재건, 법질서의 회복, 모든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 등 백악관이 발표한 6개 국정과제도 같은 궤적 안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워싱턴 백악관 뒤편 세인트존스교회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내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은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는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을, 대외적으로는 무역장벽 강화를 공표한 것이다. 대미 수출국과 기업을 향한 관세장벽과 미국 직접 투자 및 고용 압력이 거세질 것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 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최강 미군 재건’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 비판’은 위험한 도박으로 보인다. 그는 “다른 나라의 군대에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우리 군대는 매우 애석하게도 고갈되도록 했다”고 말해 동맹의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삼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손잡고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면 동북아 정세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북핵 문제 등까지 맞물린다면 한국은 거대국가들이 가하는 압박에 숨 막힐 수도 있다.

 

국수주의·파시즘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섬뜩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우리는 모두 위대한 미국 깃발을 향해 경례한다”며 “극단 이슬람 테러리즘에 맞서 문명화된 세계를 단합해 이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뿌리 뽑을 것”이라고 했다. 6대 국정과제 중 ‘법질서 회복’ 항목은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짓는 일 등에 전념할 것”이라고 못박아 놓았다.

 

무엇보다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행보의 불확실성과 포퓰리즘이다. 그는 벌써 공적 시스템을 통한 논의보다는 실세, 측근과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 방식도 한 게시물 글자를 140자로 제한한 소셜미디어 트위터에 의존하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즉흥적으로 공언한 내용을 다음 순간 뒤집는 일도 다반사다. 세계는 지금 보편적 규범과 가치를 뒤로 돌린 채 미국 우선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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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트위터에서 “북한이 미국 일부 지역에 닿을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의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한 데 따른 반응으로 해석된다. 한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 공산당 이론지 기고문을 통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반대가 올해 중국의 핵심 외교방침이라고 공개 천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올해 한반도 정세가 미국·중국 갈등 속에서 북핵과 사드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트럼프의 트위터 글은 북핵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트럼프가 미국 정보기관에 처음으로 요청한 기밀 브리핑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었다는 보도에서도 이런 태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트럼프는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내용만으로는 단순히 북핵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핵 개발을 막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물론 새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이므로 대북정책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같은 불확실한 행보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을 더해주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3일(현지시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대(對) 중국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시저 전 USTR 부대표를 지명했다. 사진은 트럼프가 지난달 28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모습. (워싱턴 AFP=연합뉴스)

 

왕이 부장의 사드 언급은 올해 한국을 더욱 압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한류 제재와 전세기 불허 등의 조치에 이어 중국이 또 어떤 보복카드를 내놓을지 우려된다.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길이 요원해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어느 때보다 엄혹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 연말 대만총통과의 통화로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흔들었다. 북핵 문제 역시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 외교는 어느 때보다 선제적 조치로 출로를 찾아야 할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이중고에 빠져 있다. 잇단 전략실패로 독자적 외교공간이 좁아지고, 국내 정치 리더십 공백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여야, 국회가 지혜를 모아 외교적 난국 대처를 위한 공동의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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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또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압수한 미국의 ‘수중 드론’에 대해 “중국에 훔친 드론을 그냥 가지라고 하라”고 비아냥댔다. 중국으로부터 드론을 돌려받은 것으로 문제를 덮으려 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 직후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한 뒤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왜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중국 압박이다. 중국도 뒤질세라 대만 상공에 전폭기를 띄우며 무력시위에 나섰다.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와 중국 간 갈등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는 경제적 상호 의존을 고려해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최근엔 반대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여겨온 ‘하나의 중국’ 정책이나 남중국해 해양권을 건드리면 양국은 전면적인 갈등관계로 치달을 수 있다. 트럼프 취임 후 적응기가 지나면 다시 협력할 수도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미·중 갈등이 잦아들 것으로 낙관하기가 어렵다.

 

(출처: 경향신문DB)


미·중이 대립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이 한반도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풀 수 있는데도 미국을 돕지 않는다”고 말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북핵과 연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줌으로써 북·중이 밀착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을 더욱 곤경에 빠뜨릴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가 자신들과 대화에 나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안보라인이 강경파인 점을 고려하면 기대가 충족되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대선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외교안보 상황은 미증유의 격랑에 빠져들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정부가 사드 배치 강행만 외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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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역사와 전설의 세계로 들어와 영광을 누린 인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피델 카스트로와 1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한 이냐시오 라모네가 피델을 묘사한 대목이다. 2006년 건강상의 문제로 쿠바의 최고 권좌에서 물러난 피델이 2016년 11월25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피델은 혁명의 이론가, 혁명군 사령관, 새로운 쿠바 정부 수립의 주도자, 쿠바 혁명 체제의 주요 정책 결정자로서 압도적인 위상을 지녔다. 그의 마지막 공식 직함은 국가평의회, 즉 인민권력의회 상임위원회의 의장이었다. 혁명 체제의 쌍두마차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이상을 대변한다면, 피델은 현실의 관리자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을 자처한 피델은 갈등과 긴장 상태 속에서 열정적인 지지와 환호, 강력한 비판과 미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엄청난 논란과 영향력의 중심에 있었다.

 

1956년 11월 망명지 멕시코에서 선언한 대로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경제적 주권 회복, 사회정의를 이루고자 대담한 정책을 추진한 피델은 오랜 경제 봉쇄 속에서도 쿠바에 전례 없는 사회경제적 평등,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무상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실현했다. 그가 변혁의 모범으로 삼은 인물은 ‘영원한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와 19세기 말 쿠바 독립 투쟁의 신화적 인물 호세 마르티’였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한 지 이틀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멕시코의 쿠바 대사관 앞에서 애도의 뜻으로 피델의 초상화가 든 액자를 들고 서 있다. 멕시코시티 _ AF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피델을 잔혹한 독재자, 자유의 억압자, 인권의 침해자 등으로 규정한다. 이는 쿠바에서 쫓겨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일파 등 반혁명 세력에 대한 처리와 응징 과정, 달리 말해 모든 혁명적 변화의 불가피한 요소에서 강화된 이미지였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민주주의 구현보다 권력 집중과 대중 동원을 통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여느 제3세계 혁명 투사들과 마찬가지로 피델을 보편적 인권의 대변자나 인도주의자로 규정하긴 어려울 듯하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맥락에서 그런 논란과 대조적 평가가 강화됐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냉전 대립에 근거한 시각의 극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냉전시대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로에 끼친 부정적 영향은 막대했다. 이 지역 지도자들이 대개 이데올로기적 선호에 따라 미국과 소련 중 한편과 긴밀히 협력하고 때로는 국민 대다수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발전 방식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에서 비롯된 이분법적 묘사와 이데올로기적 재단을 걷어내면 피델의 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피델은 마르티의 정신과 실천을 계승하려는 민족민주 혁명가, 30대 초반의 젊고 활력이 넘치는 지도자, 정적조차 인정할 정도로 축재하지 않은 검소한 지도자, 3~4시간을 넘기는 공개 연설을 즐기는 놀라운 말솜씨,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평가돼왔다. 미국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인권 탄압’을 빼들지만 과거 여러 미국 대통령들이 적극 지원한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자들이 쿠바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인권 수호란 정치적 공세의 명분일 따름이었다.

 

피델의 사망은 2018년쯤으로 예상되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력 이양과 더불어 쿠바인들에게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 쿠바인들에게는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면서 더 자유롭고 빈곤에서 벗어난 사회를 이뤄야 할 난제가 놓여 있다. 불확실한 시대의 막이 오른 셈이다.

 

미국의 공적 제1호로서 수백차례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등 고단한 삶을 살아온 ‘20세기 세계 정치의 마지막 괴물’이 사라졌다.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 이후 1953년 10월16일 피델이 법정 최후 진술에서 역설한 대로 역사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할까? 12월4일 피델의 유해는 마르티가 안장돼 있는 동남부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의 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아디오스, 피델!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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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나 경쟁자와 불가피하게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다. 어제는 적이었지만 오늘은 친구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한 친구는 아니고 언제든 다시 적이 될 수 있다. 소위 ‘프레너미(Frenemy)’이다. 친구라는 뜻의 ‘프렌드(Friend)’와 적을 의미하는 ‘에너미(Enemy)’를 합쳐 만든 말이다. 철천지원수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배에 타서 풍랑을 만난 오월동주(吳越同舟) 상황, 한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다투다가 어느새 함께 웃고 수다를 떠는 여성, 대기업에 맞서기 위해 경쟁 관계인 중소기업끼리 구축한 연합 전선 등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전 세계를 상대로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보조를 맞추는 미국과 중국도 대표적인 프레너미 관계이다. 2012년 2월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인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하자 미 언론은 “프레너미가 왔다”고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프레너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40년 지기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죗값을 덜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원수지간이 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뒤편 왼쪽에서 두번째)가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켈리언 콘웨이(뒤편 왼쪽) 등과 함께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본사를 방문해 경영진과 칼럼니스트,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욕 _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엊그제 뉴욕타임스를 방문해 이 신문을 ‘세계의 보석’이라고 극찬했다. 함께 만난 20여명의 기자에게는 “내가 잘못하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 기쁘게 들을 것”이라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대선 동안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트럼프에 대해서는 여성 편력과 세금 탈루 의혹 등을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도 대선 기간 뉴욕타임스를 망해가는 신문사라고 부르는 등 적대감을 표출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트럼프가 뉴욕타임스를 프레너미로 삼으려 한다며 우호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위정자라면 언론의 선의 있는 비판은 수용해야 한다. 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레너미와 어감이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인 등 취재원과 언론의 이상적인 관계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가까워 유착이 생겨도 안되고, 너무 떨어져 소통이 불가능해도 안된다는 의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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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 도널드 트럼프는 제일 강대국의 권좌를 차지했다. 다수의 미국인은 희망에 들떴고, 언제나 번영했던 1%는 안도했다. 또 다른 다수는 충격 속을 헤매고, 4%는 생계를 위협받으며, 1%는 린치 공포에 떤다. 1100만명의 불법체류자와 330만명의 무슬림이다. 여기에 약자로 구분되는 1%의 동성애자, 6%인 아시안, 18%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흑인과 여성을 포함한다면, 선거 결과는 가히 재앙급이다. 물론 이들 중에도 트럼프 지지세력은 있다.

 

하지만 거리를 가로지르는 위협, 극도의 혐오는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않고 히잡과 피부색만을 표적으로 삼는다. 인권단체인 남부빈민법센터(SPLC)에 신고된 증오행위만 개표 후 500건에 육박한다.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인종주의자 스티브 배넌이 지명되고 초강경 반이민 노선을 펼칠 제프 세션스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됐다고 한다. 과연 미국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백인의 실제 생활 속 우월감은 안전할까.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대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극우 인종주의자인 스티브 배넌 전 브레이트바트 대표를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임명한 데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시위자가 트럼프 가면 아래 ‘인종주의자, 편견쟁이, 사기꾼’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AFP연합뉴스

 

한국의 몇몇 진보 언론에는 트럼프 당선이 “소외된 백인 노동자들이 만든 합리적 선택”이라는 과잉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부글대던 노동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변화를 선택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트럼프가 불쏘시개질을 한 분노가 ‘합리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

 

몇몇 진보 지식인들은 트럼프 안에 진보적 가치가 있다고도 말한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판, 외교안보에서 미국의 실리를 우선하는 고립주의 노선이 주한미군 철수 같은 한국 내 일부 진보의 주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철저한 보수이며 극우 포퓰리스트이다. 그가 말한 미국의 이익이 노동자와 농민과 소비자의 이익인지, 상위 10%를 위한 이익인지 봐야 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장 환호한 그룹은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삼는 에너지산업, 군수산업, 그리고 월스트리트다. 거대 제약회사들도 즉각적으로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트럼프가 말한 감세정책이 실행될 경우 최고 1%에게는 14%가 넘는 혜택이 돌아간다. 당연히 최상위 수혜자 명단에 트럼프의 이름도 오를 것이다.

 

미국의 달러 가치를 엄호하는 힘은 군사력이다. 버락 오바마의 대북 정책이 무르다고 비판해온 마이클 플린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낙점됐다. 미군 철수는 트럼프의 ‘흔들기’일 뿐이며, 방위비 추가 부담을 요구할 압박용 카드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장관에 석유재벌 헤럴드 햄이 거론되는 데에서 보이듯, 화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긴장 국면 또한 우려를 낳는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암초를 만났다. 세계를 위협하는 반동이다.

 

트럼프 승리의 진정한 주역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다. 선거 후 통계가 보여주듯 당내 경선에서 분열됐던 지지층은 트럼프에게 다시 모였다. 거기에 오랜 시간 정치를 외면하던 나이든 백인표가 돌아오며 외연이 확대됐다. 이들이 경제적 이익과 진보적 가치를 만드는 발판으로 트럼프를 선택했다고는 할 수 없다. 백인 중하위층은 실력 위주 경쟁질서 속에서 엘리트 중심으로 꽉 짜여졌던 사회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 선택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트럼프는 또다시 배신의 선택을 준비한다. 성과 위주 교육을 대표하고, 교원노조와 교수들의 집단적 반발을 샀던 미셸 리가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된다.

 

선거 내내 트럼프가 재생한 것은 1960년대 리처드 닉슨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백인 노동자들에게 읊어댔던 3대 선동이다. ‘민권 운동 덕에 사람이 된 흑인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페미니즘에 물든 여성이 남성의 권위를 깔아뭉갠다’, ‘반전 운동의 주역들은 사회주의자이며 대학을 나온 진보 엘리트들로 너희를 멸시할 것이다’. 트럼프는 이를 ‘흑인들에게 퍼주기를 하는 오바마케어 탓에 백인 주머니가 털렸다’, ‘일자리를 빼앗는 이민자’, ‘성폭행범 라티노와 테러리스트 무슬림’으로 버전업했다.

 

여기에 동참한 세력은 백인만이 아니다. 경제력을 갖춘 이민 1세대뿐 아니라 1.5세, 2세 전문직 종사자들도 끼어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작동한 것이다. 상시적인 구조조정 속에 정보기술(IT) 업계는 값싼 무경력자, 인도나 중국, 남미 등지에서 온 고학력 이민자로 대체되고 있다. 의료계나 연구직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정책은 사이다처럼 향수를 자극했고, 먼저 이민 온 세대들은 트럼프를 용인했다.

 

노엄 촘스키는 지난 14일 선거 결과를 분석하며 ‘다정한 파시즘’이라는 말을 썼다. 오래도록 끓고 있던 분노와 두려움을 ‘솔직함’으로 폭발시키고, 그 열기에 약자를 제물로 던져버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탄생. 욕망은 논리적이지 않기에, 세계 곳곳의 분노는 극우 정당들에 손을 내주고 있다.

 

우리의 광장은 뜨겁지만 어느 순간 각자의 희망에 따라 분열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광장에서 거둬내야 할 승리는 악을 제거하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악을 무너뜨리고 세워낼 정의의 조각을 맞춰내야 한다. 각자 꿈꾸는 나라의 세세한 모양을 맞추고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더 이상 광장의 언어가 정치의 언어에 죽어가는 치욕을 허락할 수는 없다.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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