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3일(미국 현지시간)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핵심시설 해체 시작’ 보고서에서 평북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시작됐다고 위성사진 판독결과를 토대로 분석했다. 청와대도 이 동향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밝혔다. 서해위성발사장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핵심 시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곧 폐쇄할 것이라고 말한 미사일 엔진시험장이 바로 이곳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38노스의 관측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본격적인 비핵화 관련 조치를 이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는 비핵화와 관련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못지않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생산중단을 확증하기 위한 선제조치를 취함으로써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트럼프 행정부가 움직일 명분을 제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향한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평가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은 한국전쟁의 종전선언 문제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비핵화 조치를 위한 초기적 안전보장 장치로 보고, 조기에 종전선언을 할 것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이 전쟁종식을 선포하는 차원을 넘어 불가침선언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내부 반론 탓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상황이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 대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23일 “종전선언 문제는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중요한 합의사항의 하나”라면서 “유감스러운 것은, 최근 미국이 입장을 돌변해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답보 국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 시설 해체에 착수한 것은 교착국면을 선제적으로 풀면서 미국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일 것을 촉구한 의미가 있다.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사항을 실천에 옮기면서 미국에 공을 넘긴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서해위성발사장의 해체작업이 던진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화답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 조치에 상응하는 것으로 종전선언만 한 게 없다. 북한이 요구할 뿐 아니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토대이기도 하다. 미국으로서도 비핵화의 마중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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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오는 8월 실시 예정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유예하기로 했다. 유예기간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훈련이 재개될 것 같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 후속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북한은 연합군사훈련을 대표적인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간주한다. 지난달 한·미 공군 연합공중훈련을 문제 삼아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예정일 새벽에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그런 인식의 결과였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연합훈련 유예 조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 조치의 진전을 대내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비핵화가 체제 보장에 기여하는 것을 실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세번째)이 1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을 중국 관영 CCTV가 공개했다. 리설주 여사(왼쪽)와 펑리위안 여사(오른쪽)도 함께 촬영했다. 연합뉴스

 

과거에도 연합훈련 중단은 일시적이나마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는 역할을 해왔다.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때 북한은 핵물질을 자진신고했고, 지난 3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상호신뢰를 쌓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현 시점에서 군사훈련 중단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북한에 상응하는 조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를 거론했다고 전했다.

 

한·미가 북·미 정상회담 후속 협상을 하기 전에 훈련 유예를 결정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 전 북한이 실시한 핵·미사일 실험중단, 핵실험장 폐기 등 선제 조치에 호응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이 이런 조치들을 주고받는 것은 상호신뢰를 쌓고 정상회담 합의의 순조로운 이행을 담보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이른 시일 내 훈련중단에 값하는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한·미 일각에서 비핵화 조치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군사훈련을 중단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은 길고 험난한 길인 만큼 이해당사자들의 지원과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주목을 끈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정상적인 외교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석달 새 3번이나 방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얼어붙은 북·중관계 복원의 필요성이나 한반도 급변정세를 감안하면 크게 이상할 게 없다. 다만 김 위원장은 미국이 자신의 잦은 중국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외면하면 안된다. 이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김 위원장의 방중 모두 비핵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관련 당사국 모두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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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특히 한국에서 한반도의 미래와 장기적 평화 전망에 대한 전례 없는 낙관주의를 촉발했다. 6개월 전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전쟁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고, 남북과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에 대한 희망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상 첫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생각과 평정심이 필요하다.

 

세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북한과 바깥 세계 간의 더 큰 변화를 막을 수 있다. 첫째, 북한이 정의하는 비핵화와 한국·미국의 비핵화 사이에는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있다. 둘째, 관련 국가들의 기대와 (정의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에 대한 (시간표는 말할 것도 없고) 합의된 절차나 로드맵이 없다. 셋째,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핵합의의 필요조건은 정보 공개와 북한에 대한 접근, 국가 주권에 대한 양보를 포함하며 이는 북한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경제클럽’ 오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디트로이트 _ AP연합뉴스

 

비핵화 정의의 간격은 단순한 의미론의 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주장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은 채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같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고, 그 의미를 정의하는 일은 미국과 북한에 맡겨두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이 무기 프로그램들을 종결시키는 데 동의했다고 믿지 않는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 있는 핵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북한은 모든 협상은 군축에 관한 것이지 비핵화에 관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이 근본적인 문제를 애매하게 만들고 무시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는 남북 간 의제 중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판문점선언의 끝부분에 배치됐고 거의 지나가듯이 언급됐다.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핵 문제 취급은 더 걱정스러웠다.

 

성명은 애매하고 희망적인 목표로 후퇴했다. 2005년 9·19 6자회담 공동성명이나 기존 북·미 간 핵 합의보다 훨씬 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이 담기지 못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이 선언의 실제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어떤 결정적이고 명확한 언어에도 동의하는 것을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 선언에서 이 이슈에 대해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면, 북한의 핵무기를 소유하려는 결심과 미국이나 한국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 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에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의지를 전달해왔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또한 미국은 앞으로 2년 반 안에 주요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시간표와 로드맵 관련 문제들이 명확해지고, 구속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을 가속화하고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몇 주와 몇 개월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이런 큰 목표들을 진전시켰는지,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약속이 충분한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도 존재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와는 별개의 정치적 필요와 목표들이 있고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세계와의 끊임없는 적개심을 수정하지 않고도 자신의 의제들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점이다. 두 대통령들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번영하고 두 나라와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다. 미국은 북한에 미국의 비적대적인 의도를 확신시키기 위해 당면한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미래에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도 가능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힌트를 줬다. 지난 65년간 전쟁을 억지해 온 (한·미) 안보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들도 암시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 있어 전례 없는 돌파구를 찾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정상은 김 위원장이 핵 없는 미래를 위한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두 정상이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증 없는 가정을 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조너선 폴락 |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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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공동성명 서명직전 “세상은 이제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겁니다”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었다. 중대 변화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곧 모습이 드러날 터이니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포기와 그에 걸맞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했던 투자자들 시각에서 보면 북·미 공동성명은 흥미로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핵만 포기하면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트럼프가 회담말미에 핵포기 시 북한의 미래 영상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훌륭한 해안선을 갖고 있다. 훌륭한 호텔을 지을 수 있다”고 조언하고, 김 위원장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게 위안거리이다. 이쯤 되면 북한 핵포기와 경제발전은 암묵의 동의어다.

 

과연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을까. 된다면 언제쯤 가능할까.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이다. 이런 북한에 북·미관계 정상화와 그에 따른 경제지원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명약관화하다. 북한의 개방모델을 놓고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모델이 거론되지만 결국은 국가개입과 당 관리하에서 성장가능한 모델을 선택할 것도 불문가지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린 채 걸어가고 있다. 싱가포르 _ 로이터연합뉴스

 

따지고 보면 중국과 베트남의 성장과실은 30~40년에 걸친 개혁·개방의 결과물이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1992년 남순강화를 거치면서 저임금에 매력을 느낀 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고도성장이 시작됐다. 1986년 도이모이정책을 시작한 베트남도 1994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거쳐 한국·일본의 주력제품 생산기지가 옮겨오면서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외부와의 단절, 사회주의 잔재가 남은 상황에서 시작한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작업에 비하면 북한의 여건은 훨씬 유리하다. 김 위원장은 집권 뒤 그간 억눌러왔던 시장을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시장경제 예비군인 장마당은 이미 400개를 넘어섰다. 4개였던 경제특구도 20개 이상으로 늘었다. 게다가 북한 곁에는 세계 10위권 한국 경제가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쟁쟁한 글로벌 자본들도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비핵화만 이뤄지면 개혁·개방에 가속도가 붙을 것은 명확하다. 김 위원장도 지난 4월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 노선으로 채택하면서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 재건으로 민생이 개선되면 권력기반이 강화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최빈국 수준이다. 2016년 현재 1인당 소득은 150만원이다. 3500만원인 한국의 25분의 1 규모이다. 교역규모는 9016억달러 대 65억달러, 외국인 직접투자는 108억달러 대 0.9억달러이다. 경제 전체를 보면 한국의 50분의 1 수준이라는 게 정설이다. 북한의 개혁 방향을 놓고 말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1차 산업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외자가 들어오면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특구 개발에 속도가 날 것이다.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그런 다음에는 소비혁명이 기다린다. 제대로만 진행되면 10년이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북한의 기회는 한국의 기회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파트너이다. 한국의 자본과 산업화 경험이 북한의 인력, 자원 등과 결합하면 획기적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 한발 나아가 남북 단일시장이 형성되면 더 큰 것을 누릴 수 있다.

 

70년간 적대관계였던 북·미 정상이 마주 앉은 것은 역사적 진전임이 분명하다. 과거 핵을 포기하면 대가를 준다는 방식에서 벗어나 적대관계 해소를 먼저 다룬 뒤 미국이 먼저 양보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는 방식은 기존 문법과는 다른 역발상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이미 비가역적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경제분야라고 역발상을 못할 게 없다. 경제자위론은 핵자위론 못지않다. 경제가 번영하면 상호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 위원장이 덩샤오핑처럼 개혁개방의 전도사가 되고, 원산이 상하이가 되면 자연스레 전쟁은 멀어진다. 등산 애호가인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뒤 백두산·개마고원 트레킹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부동산 사업자인 트럼트는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질지 모를 트럼프타워에서 퇴임 뒤 꽃놀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강릉의 안목해변처럼 원산 해변가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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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해 비판론이 제기된다. 공동성명에 비핵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일방적으로 김정은에 놀아난 실패한 회담”이라고 혹평했다. 트럼프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 방침에 대한 안보 우려도 나온다.

 

공동성명이 기대치를 밑도는 것은 맞다. 전문의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재확인’과 3번째 합의 사항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확약’은 포괄적이다. 미국이 강조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뒷받침한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업무오찬 직후 싱가포르 카펠라호텔 주변을 함께 산책하고 있다. 싱가포르_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여타 정상회담과 성격이 다르다. 70년간 적대해온 두 나라의 정상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것만도 평가받을 일이다. 공동성명에 못 박지 않았지만 두 정상이 후속조치를 이행하기로 약속한 것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도 미국의 신뢰 구축 조치에 상응하는 “선의의 조치”를 취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아직 회담의 성패를 단정지을 때가 아닌 것이다.

 

북·미가 비핵화에 대해 단순한 핵폐기를 넘어 관계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북핵 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므로 이를 해소하지 않고 핵만 폐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적대관계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 핵개발의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두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 및 북·미 수교를 추구하기로 한 것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꾀한다는 의미가 있다.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평화를 위한 여정에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더구나 북한은 벌써 6개월째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해오고 있다. 한·미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연합군사훈련을 일시 유예하지 않았는가. 안보 측면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모처럼 마련된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 구축 작업의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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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을 제공하고,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의 노력, 북한의 4·27 판문점선언 재확인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 북한 지역의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등 4개항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또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이른 시점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격이 맞는 북한 고위급 인사 간에 후속 협상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백악관 방문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70년 적대관계를 털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의 길을 함께 가기로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지구상 유일의 냉전 지역이던 한반도가 군사적 대결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번 회담은 포괄적이며 선언적이다. 특히 합의에서 미국이 원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빠졌다. 비핵화의 구체 조치나 시한이 담기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 입장에서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 재확인’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70년 동안 대결해온 양국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만나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큰 틀의 공동 목표를 설정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냉전과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핵화 로드맵은 실무자들 간의 후속 회담에서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양국 정상 간 합의는 실무자들이 관여한 종래의 북·미 합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이 절대적 존재인 김 위원장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싶다. 북한이 CVID란 표현에 대해 무조건 항복이 연상된다며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CVID와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4·27 판문점선언도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돼 있다.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데 실질적으로 CVID 없이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체제안전 보장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약속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에 따른 필수적인 상응 조치이자 북·미 적대정책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번에 체제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핵화 이행 조치를 협상하는 후속 회담 과정에서 다뤄질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북·미 수교 역시 매우 중요하다. 비핵화를 촉진하고, 비핵화를 완결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 폐기와 수교를 통해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는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료와 평화협정이 체결될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회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해체해 지구상 유일한 냉전을 제거해야 한다. 특히 종전선언은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 보장의 첫 단계로, 남·북·미만의 뜻만 모아지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북한과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매우 도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대화 기간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할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공식적인 합의 못지않은 중대 사안이다. 북한이 그간 미국의 적대행위와 핵개발의 원인으로 한·미 군사훈련을 지목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실질적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 없이 불쑥 언급한 것이어서 한·미 협의를 통해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두 정상이 단독 및 확대 회담과 오찬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은 것은 합의 못지않게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김정은 위원장은 안보와 번영을 위한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단 하루 회담했지만 신뢰가 쌓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정상이 자주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미국의 북핵 우려와 북한의 체제안전 우려를 불식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이 계속 만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번에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신뢰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두 정상이 정상회담을 열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을 약속한 것만 해도 진전이다. 그러나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특히 비핵화 합의가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미국 주류와 보수층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간 미국 내 여론이 공동성명에 CVID 표현이 담기는지 주목해왔다는 점에서 회담 성과 논란이 심화될 수도 있다.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 때 그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진 것이 그런 관측을 낳게 한다.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비핵화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 가급적 빨리 북·미 간 후속 회담을 열어 정상회담 합의를 뒷받침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트럼프와 김 위원장은 이제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정상들이 직접 나선 만큼 북핵 해결 과정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이 일거에 해소될 수는 없다. 만남과 협상을 통해 신뢰를 쌓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진전된 조치를 만들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지원과 중재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오랜 세월 한반도를 압박해온 분단과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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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세기의 만남’이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다. 북·미 두 정상이 성공적인 합의를 이뤄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전기가 마련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남은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위대한 출발선에도 두 사람은 나란히 서게 된다. 70년간 반목과 대립을 거듭해온 양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변적 의미가 있다. 이미 두 정상이 이틀 전인 10일 싱가포르 현지에 입국해 리셴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등 사전 일정을 시작한 것은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 부여하는 무게감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북한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체제안전 보장 및 제재해제가 어떤 수준에서 거래되느냐일 것이다. 두 정상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전체 일정을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그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 단계적·동시적으로 이행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비핵화-체제 보장의 초기 조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아낼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북한이 통 크게 비핵화 초기 조치를 이행하고, 미국도 종전합의는 물론 외교관계 수립 일정을 합의문에 명시하는 방안이 합의될 수도 있다.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에는 눈에 띄는 점들이 적지 않다. 우선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러·몽골이 아닌 제3국을 정식 방문한 것은 1984년 김일성 주석의 동유럽 순방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 합중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첫 상봉과 회담을 위해 중국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와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이라고 회담의제를 공개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외국 방문을 귀국 전에 보도한 것도 이례적인 데다 타국 항공기 편을 이용한 사실을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한 것도 파격이다. 체면과 자존심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성향이 반영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회담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북한의 각오도 엿보인다.

 

미국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오찬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 아주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가 발신해온 메시지는 가변적이지만 이제는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 출발에 앞서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단 한번의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회담을 ‘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북한과 관계 맺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회담에 그치지 않고 워싱턴 혹은 평양에서 후속 회담을 이어가며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최종목표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 엿보인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북·미 정상회담은 ‘미지의 영역’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 위에 두 사람이 서게 될 줄은 반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양측 당국자들의 성의있고 진지한 노력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이 더해져 비로소 열린 길이다.

 

70년에 걸친 뿌리 깊은 적대관계와 북핵 문제가 한 차례 회담으로 일거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두 정상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 회담이 평화로 가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기를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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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기싸움 과정에서 북한의 대응은 인상적이었다. 그 백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다롄 방문이었다. 미국이 비핵화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인권문제까지 거론하며 압박해오자 맞불카드를 꺼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소원했던 관계를 복원함으로써 미국과의 담판을 앞둔 상황에서 뒷배를 든든히 다져놓은 바 있다. 그런 그가 불과 40일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을 버팀목 삼아 미국에 맞선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미국은 비핵화 요건을 원래 수준으로 완화했고, 추가적인 요구사항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이 정상회담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 실리를 챙기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과거 북한의 등거리외교를 연상시킨다.

 

싱가포르 유력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가 11일자 신문 1면 톱기사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회담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싱가포르 _ AP연합뉴스

 

중·소 분쟁 시절 균형외교는 북한의 생존전략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중국과 소련 사이를 오가며 막대한 원조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소련이 6·25전쟁 차입금을 탕감하고 화력발전소와 정유공장을 지어주면, 중국도 뒤질세라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고 고무타이어공장을 건설해주는 식이었다. 공산권 패권과 이념을 놓고 갈등하던 중국과 소련은 우군확보를 위해 빚을 내면서까지 북한 지원에 매달렸다. “북한이 외교 하나는 잘한다”는 외교 속설이 나올 정도였다. ‘줄타기외교’란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탁월한 외교술이 북한의 생존과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북한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공산권이 붕괴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서방과 수교하면서 균형외교를 펼 상대가 사라진 것이다. 1994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기간 내내 그럴 기회를 아예 갖지 못했다. 이때 북한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서방의 제재가 집중되고 공산권으로부터는 지원이 끊기는 이중의 곤경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국력 쇠퇴와 체제 위협의 가중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핵개발도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선보인 전략은 ‘신균형외교’라 할 만하다. 중국과 소련의 경쟁 구도가 사라진 상황에서 핵폐기를 수단으로 균형외교를 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대를 건너뛰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외교재능 DNA를 물려받았는지 모른다. 북한에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60년간 균형외교를 이끌어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란 외교자산이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김영남은 1928년생으로 올해 만 90세의 고령이지만 김정은의 외교 가정교사로 부족함이 없을 터이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김여정과 방남한 그는 꼿꼿한 자세와 조리 있는 말솜씨로 녹록지 않은 존재감을 알렸다. 북한이 40여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가장 잘했던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 셈이다.

 

사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은 어느 한 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등거리외교가 필수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대륙세력과 해양 세력,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접점에 자리한 지정학적 위치 탓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본디 반도국가는 지정적학 위치에 따른 득과 실의 잠재적 가치를 갖지만, 남북은 전략 요충지나 교두보로서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완충역할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남북이 미국과 중국 및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중 상당 몫을 반목과 갈등 비용으로 도로 지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6·25나 각종 군사 충돌로 인한 인적 피해를 고려하면 결코 제대로 실리를 챙겼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김정은의 신균형외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비단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70년간 남북한 7000만 민족을 옥죄어온 적대와 군사적 대결을 제거하고 한반도 평화가 조성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중국이 아닌,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견제와 균형을 주조로 하는 균형외교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북한은 중국의 완충국가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친미국가, 미국의 우방국이 될 수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제사회와 조화롭게 지내는 정상국가 북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북한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한반도 평화, 남북 화해 및 공동 번영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는 믿음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근본틀이 깨지는 과정에서 고통과 혼란이 있겠지만 그것은 즐거운 혼란일 터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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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10일 “(폼페이오 장관이) 조미(북·미) 수뇌회담 준비를 위하여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에게 북·미 정상회담 사실을 알린 것은 좋은 신호다. 이제 북한에 정상회담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폼페이오 장관도 김 위원장 등과 “의제로 올려놓으려는 사안들에 대해, 그리고 성공적 회담을 위한 여건들을 확실히 갖추기 위해 어떤 식으로 조율해 나갈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간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며 웃고 있다. 평양 _ AP연합뉴스

 

북·미의 이런 움직임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됐음을 시사한다. 최근 미국 측이 비핵화의 수위를 ‘완전한 비핵화(CVID)’에서 ‘영구적인 비핵화(PVID)’로 높이는가 하면, 대량살상무기, 북한 인권 등을 새롭게 요구하고, 이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생성된 난기류가 가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직전 비핵화 수위를 애초의 CVID로 낮춘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의 수준과 달성시한에 동의했고, 미국도 체제안전 보장에 대해 북한이 만족할 수준의 방안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중앙TV가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관심을 보였다고 보도한 대목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7~8일 방중 과정에서 거론한 ‘대북 적대정책과 안전에 대한 위협 해소’에 대해 미국이 진전된 답안을 내놨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태까지 일방적인 비핵화만 요구하던 미국이 그 반대급부를 제시했다면 정상회담에서의 ‘빅딜’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이 그동안 억류해온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석방해 폼페이오의 귀국길에 동행케 한 것도 호재다. 북·미 양측이 마지막까지 진지한 대화로 요구사항을 조율해 나가는 모습은 회담 전망을 밝게 한다.  

 

이로써 북·미 양측은 정상회담으로 가는 막바지 고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빅딜’의 이행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완전히 해소됐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조치에 대해 미국은 “잘게 쪼개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세밀한 추가 조율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 중재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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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또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8일 전용기 편으로 중국 랴오닝성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고 북한과 중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2012년 집권 후 북한을 벗어난 적이 없는 김 위원장이 지난 3월에 이어 40일 만에 중국을 재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생전 처음 항공기를 타고 외국방문길에 나선 데다 방문지도 수도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아무래도 급하게 시 주석을 만나야 할 사정이 생긴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판문점선언에서 중국의 한반도 평화체제 당사자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 시 주석 역시 방중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8일 중국 다롄의 휴양지 방추이다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다롄 _ 신화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최근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난기류 조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회담 개최 장소 및 일정 발표가 지연되고, 미국 측에서 비핵화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요구들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와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 측의 공세를 경고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방중이 문제될 것은 없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기싸움의 일환으로 보면 될 터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방중이 북·미 정상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의 회동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확고부동하고 명확한 입장”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유관 각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과 안전 위협을 없앤다면 북한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고 비핵화는 실현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이 또 “북·미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유관 각국이 단계별로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조처를 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추진하자”고 말한 것은 단계별 비핵화와 북한 체제안전에 대한 다자적 보장 및 이행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한반도 평화구축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을 도리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핵화 문제를 미·중 패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미만의 힘으로 풀기 어렵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이해당사국이자 지지세력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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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판문점이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리는 싱가포르를 포함해 다양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의집·자유의집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야기했고, 문 대통령을 통해 북한과도 연락했다”고도 했다. 미국과 북한이 내부 검토를 넘어 문 대통령을 매개로 ‘판문점 개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는 ‘역사의 메카’가 될지 주목된다.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9시30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사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으로 넘어 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는 북·미 양측에 통상적인 정상회담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회담인 데다 한반도와 세계평화가 걸린 세기의 담판이기 때문이다. 양국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경호나 홍보 등 실무적인 문제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평양과 워싱턴은 일찌감치 후보지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체제에 대한 합법성 부여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북한은 워싱턴에서는 경호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싱가포르나 몽골은 나쁘지 않은 후보지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차선책일 뿐이다. 

 

판문점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우선 중립적 성격을 띠는 ‘제3의 공간’이기 때문에 북·미 모두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판문점이 갖는 한반도 분단과 화해의 상징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곳에서 평화체제로의 대전환을 협상한다는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북한군과 유엔사가 관할하기 때문에 경호가 용이하고, 서울과 개성을 베이스캠프 삼아 차량 이동도 편리하다.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생중계가 완벽하게 이뤄진 점은 흥행 효과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도 맞을 것 같다. 판문점이 다른 해외 후보지와 달리 회담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 장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미 간 사전 협상이 잘돼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정상회담 기간에 석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동행 귀국하는 장면은 판문점에서만 보여줄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개최지를 확정하지 못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도 매우 밝아진 상황이다. 더 이상 개최 장소 문제로 소모적 논쟁을 벌일 시간도, 이유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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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의 새 역사를 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아침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한다. 남북이 대결 상태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리면서 한반도 대결 구도의 양축인 남북 및 북·미 대결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분단과 전쟁, 적대와 대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남북은 과거 두 번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수많은 회담을 열었지만 대결을 끝내지도, 평화를 일구지도 못했다. 한반도 평화 문제의 핵심인 미국을 제외한 채 남북만의 논의에 그쳐 한계가 뚜렷한 탓이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회담을 둘러싼 외적 환경은 긍정적이다. 남북은 김 위원장의 올 신년사를 기점으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회담을 성사시켰다. 한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려는 수요가 큰 것이다. 북측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전격 결정했다. 회담 전망을 밝게 하는 소식이었다. 남측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호응했고, 북측도 같은 조처로 화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측의 선도적 조치를 환영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이 북측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지역으로 내려오는 것은 남북 해빙의 출발을 상징한다. 북핵 문제의 원인 제공자인 김 위원장이 잇단 자발적인 조처들과 함께 안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쪽행을 하는 것은 그만큼 회담이 불러올 화해가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반드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둬야 하는 벼랑 끝 담판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한의 핵개발과 위협으로 조성된 긴장 고조의 최정점에서 시작된 대화의 성과가 미진할 경우 북핵 해결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용기와 결단으로 회담을 성사시킨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결실을 거둘 것으로 믿는다.

 

이번 회담의 핵심의제는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 발전 3가지다. 세 가지 의제는 서로 맞물려 있어 어느 하나만 개선되는 방식으로는 진척을 볼 수 없다. 서로 촉진하는 선순환의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북·미 현안이기도 해 남북 간 논의만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특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핵화의 경우 북·미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이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의 수준을 적정하게 조절할 필요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문 대통령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체제보장과 군사적 위협 해소를 조건으로 비핵화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비핵화 합의 수준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의 논의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최소한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진전된 입장이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각오로 창의적인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핵폐기 방법 및 시한 등 구체적인 방안도 논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비핵화에 맞춰 진전시켜가야 한다. 핵이 사라졌다고 해도 북·미 사이에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비핵화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핵제조 기술과 인력, 경험이 있으므로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핵 재보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등 일부 사안이 국제문제화돼 남북만의 논의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 그러나 남북 간 독자 합의가 가능한 영역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무장지대 내 남북 초소 철거나 무기 철수 등이 대표적인 사안이다. 남북관계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우선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와 군사 분야 등 각급 남북회담 재개 및 정례화에 합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차기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반드시 개최 일정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판문점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이다.

 

이곳에서 정전체제를 마감하는 논의를 시작하게 된 것은 상징 이상의 의미가 크다. 남북정상회담이 70년 대결의 시대를 넘어 평화의 시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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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갈등으로 치닫던 북·중관계 회복과 한반도 비핵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비핵화는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시 주석 면전에서 직접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비핵화가 흔들림 없는 정책 목표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면담석상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지만 이후 한국과 미국 일각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비핵화를 내세운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남, 대미 관계 개선 시도가 대북 제재를 피해 핵개발을 하려는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우려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의구심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유사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이징 _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또 북·중 정상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먼저 평화 실현 조치를 하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선(先) 조치, 후(後) 비핵화’ 방안은 향후 핵심 당사국들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핵포기를 주장할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이 문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과 조화될지도 주목된다. 비핵화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비핵화가 필수적이라는 남북한과 미국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등을 단계별로 맞교환하는 해결책을 담은 9·19합의 등 비핵화 논의에 참고할 만한 기존 합의와 구상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이다. 과거 북·미 간에 여러 차례 비핵화 합의를 하고도 번번이 깨진 것은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상황에서 끼어드는 형국으로 갑작스럽게 열렸다. 이것이 새로운 변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 정상화는 일차적으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국의 역할 확대를 미·중 패권 경쟁에 활용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북·중관계 회복이 대북 제재의 끈을 헐겁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일환으로 경협 활성화를 논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대북 제재 강화가 아니라 정밀한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착실한 이행으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국인 중국이 남·북·미 간 관계개선과 비핵화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시점의 문제였을 뿐 불가피한 일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주변국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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