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형식 (봄내,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가볍게 쓰겠다는 것이... 서설이 벌써 너무 길어졌네요. 


원래 이번 글은 제가 경험한 어느 기업의 사회적인 성격의 ‘너무나도’ 혁신적인 프로그램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보려고 시작했는데...

최근 라이언에어(www.ryanair.com)를 몇 번 이용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가항공의 개척자로서 워낙 유명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발상을 전환하는 파격적인 운항방식도 잘 알려져 있죠.
저렴한 요금을 선택한 대가로 자질구레한 불편을 감내하는 가운데, 라이언에어의 혁신적인 마인드가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몇 가지 재미있는 점들을 관찰할 수 있어서,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라이언에어의 세 가지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

먼저, 라이언에어의 ‘€Million’ 프로그램입니다.
어느 항공사의 승무원들 보다 더 바쁜 것 같은 라이언에어의 승무원들이 군것질 거리 판매를 위해 한 번, 면세품 판매를 위해 한 번 지나간 후, 다시 무언가를 판매하기 위해서 복도에 나서더군요.
승객들이 혹시라도 무얼 파는지 이해하지 못할까봐 방송을 통해 다국어로 친절하게 설명한 상품은, 다름 아닌 ‘복권’! 라이언에어에서 발행하는 이 2유로짜리 복권은 1등으로 당첨될 경우, 4만 유로의 현금이나 4만 유로에 해당하는 차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권의 수익은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와 시력장애 예방을 위한 단체를 위해 쓰입니다.
복권을 6개 사면 20%를 깎아서 10유로에 준답니다. 다른 항공사들도 기부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기부 봉투를 나누어주고 거두어가는 정도의 소극적인 프로그램들이죠. 이렇게 복권이라는 상품을 개발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공세적으로 실천하는 기업은 드문 경우일 겁니다.

사실, 처음 라이언에어를 탔을 때부터 보았던 복권프로그램은 신선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사회적기업에 관련시켜 이야기를 할 동기까지는 부여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저를 자극한 것은 엊그제 라이언에어 기내잡지(좌석마다 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승무원이 배포하고 회수하는... 하지만 광고로 가득한 이 잡지는 라이언에어에서 화장실과 함께 유일한 무료 서비스입니다. 가져가도 무방한...)에서 발견한 정말로 독특한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인 ‘The Girls of Ryanair’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마다 라이언에어 여승무원들을 모델로 하여 세미누드 사진을 찍고, 이 사진들로 제작된 달력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인데, 올해는 몇 주 만에 모두 팔린 달력판매 수익금 11만 유로를 장애어린이를 위한 재단에 기부했다고 하네요.

처음 기사를 보았을 때, “이건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들이나, 기꺼이 세미누드 모델이 되어준 승무원들이, 스스로가 플레이보이지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뭔가 참신한 발상과 파격적인 마인드가 필요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어 찌되었든 기업총수가 부정부패로 처벌을 받은 후, 선처를 조건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사재를 출연하여 조성된 기금 보다는 훨씬 좋은 돈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류사회에 의해 낙인찍히고, 소수자로 몰려버린 흡연자들을 위한 적극적인 배려 또한 인상적인 라이언에어의 정책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비행시간 동안 흡연을 못해 괴로워하는 흡연자들을 위해 기내 면세품 판매 시, 연기가 나지 않는 전자담배를 판매하더군요. 혹시라도 정보부족으로 흡연자들의 권익이 손상되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방송으로 면세품 판매를 알리면서, 역시 다국어로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전자담배 판매만 한다면, 수익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면서, 현지의 시간과 날씨 정보 등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을 하면서, 꼭 “이 공항의 흡연구역은 어디어디에 있다”는 정보를 빼놓지 않더군요. 이 정도면 전자담배를 팔기 위한 마케팅을 넘어서서, 소수자에 대한 일관된 배려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착륙을 전후로 하여 비행기를 급강하시킴으로서 승객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거나, 착륙을 하면서 뒷바퀴를 좀 세게 지상에 걸침으로서 뒷좌석에 앉은 승객들에게 비행기 사고에 대한 가상체험을 제공하는 고객서비스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라이언에어도 사회적 기업인가? 

다소 비꼬는 투로 쓰기는 했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라이언에어가 어떠어떠한 기업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가끔 글이 옮겨지면서 진의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어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의 혼란스러운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를 좀 과장해서 써 본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은 “그래, 라이언에어도 사회적기업이네!”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앞으로 유로진보넷을 통해 나눌 글을 통해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지,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던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변화는 무엇인지, 이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왜 라이언에어가 혁신적인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공헌만으로는 사회적 기업이라 불리기 적합하지 않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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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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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좌파 한인들의 유럽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유로진보넷(http://eurojinbo.net)의 기획시리즈 <도시, 마을, 그리고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엄형식님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엄형식님은 이 글에서 요즘 유행처럼 이야기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 연원과, 그것이 상업적으로 오히려 '악용'되는 과정에 대해 지적합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인간의 얼굴을 한 '다른 경제'를 고민하기 위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에 첨부된 이미지들은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입니다. 원문은 유로진보넷 사이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운영자



엄형식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사회적경제란 무엇이고, 사회적 기업은 무엇인가? 왜 최근 들어 사회적 기업이 주목을 받고 있고, 사회적 기업은 그러한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무엇이 사회적 기업의 ‘새로움’이고, ‘사회적’ 성격인가? 사회적경제와 사회적 기업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경제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는가?

저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대안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기획으로서의 사회적경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이러한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개념에 대한 이야기와 현장의 사례들에 대한 소개, 개인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풀어가는 방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 -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에서 도깨비방망이로 

사회적 기업은 ‘무엇이다’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려질 수 있는 실체에 대한 개념이 아닌, 어떠한 현상을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함으로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적 도구일 뿐입니다.

태초에 ‘사회적 기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죠. 따라서 누군가가 특정한 현상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정의할 때, 우리는 ‘이것이 정말 사회적 기업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보다, ‘왜 그 사람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들이 단순한 말장난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새로운 표현으로 불릴만한 변화와 새로운 현상이 우리 시대에 존재한다는 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목할 점은, 최근 들어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많이 사용되면서 당초 특정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넘어서서, 개념 스스로가 고유의 의미를 가진 실체인 것처럼 자가발전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개념이 공공정책에서 인정받기 시작하고, 변화한 사회 속에서 잘 먹히는 새로운 마케팅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제가 보기에) 유럽에서 사회적 기업 (social enterprise) 개념이 등장한 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미국식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 사회적 기업가 정신(social entrepreneurship) 개념과 중복되면서, 개념이 밝히고자 했던 역사적 현상과 별로 관계없는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개념으로 변모해왔습니다.
이는 다양한 이해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사회적 기업 개념이 정치적으로 동원되어온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착한 기업'들의 현실을 비꼰 카툰. 출처는 http://www.zdnet.com/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적 개념이 대중적으로 그 적절함을 인정받아 발전하는 것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시민사회에 토대를 두고 ‘해방’의 가치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던 역사적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했던 개념이 자본과 국가의 도구적 개념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자본과 국가가 시민사회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개혁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고, 저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여전히 판단유보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오해 - 사회적 혁신이면 충분한가? 

개념 자체의 자가발전을 촉진시키는 논거 중에 ‘사회적 혁신’을 사회적 기업의 핵심으로 보는 접근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조직적 특성, 즉 비영리적 성격과 민주적/참여적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산출하는 활동의 결과물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혁신적 성격을 강조하는 경향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회적 기업이라고 불리는 조직들이 보여주는 주요한 혁신은 자본주의 기업과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인드, 민주적/참여적 지배구조를 통해 구현되는 일하는 사람 및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설정, 그리고 스스로가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로서 다양한 지역시민사회의 자원과의 연계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상적으로만 보면, 이러한 사회적 기업의 혁신능력은 기존 자본주의 기업의 발상을 뛰어넘는 ‘혁신적 사고’의 하나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 다른지 보다는, “다르다”는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죠.

결국, 사회적인 목적에 조금이라도 관련되는 혁신적인 발상이 쉽게 ‘사회적 혁신’으로 해석되고, 더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표방하는 자본주의 기업이나, 운영방식에서 소비자 참여의 폭을 넓히고 수익의 일부를 공익사업에 사용하는 공기업들도 사회적 기업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하곤 합니다.
어찌되었든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기업’이니까요... 이렇듯 개념의 자가발전은 개념이 시작되었던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 새로운 개념으로 진화하고, 더 나아가 원래의 가치에 대척되는 반대편의 개념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개념’ 일병 구하기 - 그의 이름을 바꾸어서라도...  

저는 사회적 기업 개념이 당초 설명하고자 했던 현상은 시민사회의 해방적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운동들이었고,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기업 개념은 그것이 갖는 정책적 유용성 이전에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먼저 이해되고 설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자가 발전한 개념이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벗어난다면, 이는 다른 용어를 통해 설명되거나 (사회적 기업가나 사회적 기업가정신과 같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오용이 이미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었다면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원래의 현상을 구별하여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용어도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오래된 개념이지만, 사회적 기업만큼 인기가 있지는 않은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을 제가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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