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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재계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신임 회장은 취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 6월2일 일본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단체가 정치헌금 알선을 재개할지를 연내에 판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통 ‘게이단렌(經團連)’이라는 줄임말로 더 유명한 이 단체는 한국의 전경련과 성격이나 위치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게이단렌은 1950년대 중반부터 정치헌금의 총액을 정한 뒤 각 기업의 자본금, 매출 규모 등에 따라 금액을 할당하는 등 자민당 정권과 깊은 유착 관계를 형성해 왔다. 게이단렌의 정치헌금 알선은 비(非)자민당 정권이 들어선 1993년 폐지됐다가 2004년 재개된 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2010년 다시 없어졌다.

게이단렌 회장의 발언이 있고 난 다음날 일본의 정부·여당에서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2015년부터 법인세를 인하하기로 방침을 결정한 것이다. 법인세 인하는 재계의 최대 숙원으로 꼽히는 정책이다.

일본의 한 시민단체 대표는 “정책을 돈으로 사는 악질적인 수법이 부활하고 있다”며 게이단렌과 일본 정부·여당의 이런 움직임을 강력히 비판했다. 일본에서 기업이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내는 헌금은 위법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을 지원하는 대신 기업이나 단체의 정치헌금을 폐지하는 쪽으로 일본 정치가 발전해 가고 있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던 상당수 국민들은 ‘정치헌금’의 부활 움직임에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 도쿄신문 등 언론들도 게이단렌과 정권 사이에서 다시 등장한 ‘유착’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정권과 재계는 눈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오히려 양측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지난 7월24일 도쿄에서 열린 게이단렌의 하계 포럼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사카키바라 회장은 “현직 총리가 포럼에 온 것은 8년 만”이라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이후 사카키바라 회장 등 게이단렌 간부들은 지난 7월 말부터 8월 초에 이루어진 아베 총리의 중남미 순방에 동행하는 등 ‘정·경 일체화’ 분위기를 대내외에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권에 비판적이던 전임 게이단렌 회장 재임 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8일 드디어 사카키바라 회장은 기업의 정치헌금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는 정치헌금을 ‘사회헌금’으로 규정한 2003년의 게이단렌 지침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뒤 1300여 게이단렌 회원사를 상대로 정치헌금을 알선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아베 정권은 최근 법인세 인하·노동시간 규제완화·원전 재가동·엔저정책 등 ‘성장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선물 보따리를 잇따라 펼쳐놓으면서 ‘돈뭉치’를 흔들며 나타난 재계에 ‘통 큰 화답’을 내놓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이른바 ‘성장전략’은 대부분 기업들의 돈벌이를 밀어주고 도와주는 것들이다.

일본 게이단렌 회장에 취임한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 (출처 : 경향DB)


노동시간 규제 완화 정책은 기업들로 하여금 보다 쉽게 사람을 쓸 수 있게 할 것이고, 원전 재가동 정책은 기업들에 보다 싼 전기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정권이 ‘무기수출 3원칙’을 버리고 새로 취한 ‘방위장비 이전 3원칙’도 많은 기업들에 무기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심지어 일본 국민들의 노후를 지탱해줄 연금자산을 주식에 투자해 증시를 부양하는 정책까지 쓰기로 하는 등 ‘친기업’ 정책을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노동시간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한 근로 조건 악화를 걱정하는 직장인들, 방사능 공포 속에서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원전 인근 주민들, 그리고 연금 하나에 의존해 노후를 보내야 하는 수많은 보통의 일본 국민들은 정권과 재계 사이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이런 유착관계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윤희일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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