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에 무엇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밖에서 본 안’ 혹은 ‘안에서 못 느꼈던 밖’ 이라는 것에 꽤나 당혹스러웠다는 걸 인정해야 겠다. 외국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부하는 내용(내 경우는 ‘환경’이다. 환경을 파괴하지 못해 안달난 나라에서 살다가 온 내가 지금 이 곳에서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공부하고 있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왜 이런 거 있잖아, 완전 희한하지 않냐?”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나라는 한 인간이 느끼거나 배울 수 있는 절대적인 경험치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을 단순히 어떻더라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건 이렇다’라고 단순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피하고자 하는 부분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재미는 있다. 파시즘도 원래 모든 것을 단순화 시키고 흥미롭고 왠지 나름의 논리가 개인적인 체험과 맞물려 말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 아, 너무 멀리 나갔다. 그저 앞으로 내가 말하는 것이 때로는 자의식 과잉에 편견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 뿐이다. 약간은 불친절할지도 모르는 글에 대해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정도의 포용을 바라는, 미리 드리는 사과문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나는 현재 뉴욕주립대에서 환경공부를 하고 있다. 시러큐스(Syracuse) 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환경산림대학원에서 논문과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시라큐스는 어감이 예뻐 좋아했는데 근처 로마(Rome)나 트로이(troy) 같은 지명으로 짐작해보건대 이탈리아 어딘가의 마을 이름이지 않을까 싶다.
인구대비 공원 수가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라고도 한다. 뉴욕이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을 무렵, 뉴욕과 캐나다를 잊는 수로가 지나가는 주요도시 중 하나가 이 곳이었고, 그 시절의 잠시 동안 깜짝 번성기간이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할 얘기가 정해졌다. 대 호수(Great Lake)와 뉴욕시티(NYC)를 잇는 Erie canal, 이리 수로 혹은 운하.

무려 1825년에 완공된 이리(Erie) 운하는 위에서 잠시 말했듯, 뉴욕과 맞물려 있는 대서양으로 물건을 운송하기 위해 만든 교통시설이다. 미국은 땅덩이가 실제로 보고 느껴봐야 정말 크구나 하고 체감하게 될 정도의 넓은 나라라 내륙에서 해안으로 물건을 운송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택배를 신청하면 아주 빨라야 3일, 평균 일주일, 늦으면 한 달도 걸리는 곳이니까.
그런 지역에 있으면 좀 더 빠른 운송수단을 찾는 일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된다. 어딘가의 ‘정비’ 사업과는 다르게.



어쨌든 1807년에 사업을 신청한 이 새로운 운하는 뉴욕시티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콘크리트의 정글로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그 다른 쪽 끝인 그레이트 레이크의 도시 버팔로(Buffalo), 수로가 지나가는 도시들, 로마, 유티카(Utica), 시러큐) 그리고 마지막 알바니(Albany) 또한 호황을 누렸다.
그 호황은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미국의 많은 인구가 뉴욕 주로 이주하게 되었고, 많은 관련 산업들이 발전했다. 그 때 이주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이 초록이 많은 곳을 떠나지 않고, 그 산업의 아주 일부 역시 남아있다.
그 때의 사람과 그리고 주인이 떠난 산업 현장들은 아직도 그 때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이미 이리 운하를 대신한 뉴욕주 바지 운하(New York State Barge Canal)도 그 쓰임새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이리 수로의 물은 거의 다 말라붙었고, 말라 붙지 않은 물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곳들은 주민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실제로 운송이 행해졌던 곳들은, 마치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같은, 그 정도의 아우라는 없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유적지 같은 느낌만 남아 있다.

사실 페르세폴리스는 좀 과장이지만, 길을 잃어 버팔로 시내 어딘가를 지나갈 때, 그 항구의 모습은, 몇해 전 페르세폴리스의 폐허에 야생화만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같은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 잠깐의 호황은 황홀했었고, 인간의 기술력에는 한계가 없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운송의 어려움과 동시에 실업률까지 해결한 그 곳에 남은 것은 후광조차 없는 쓸쓸함이라니. (그럼 대체 이 정도의 이유도 없이 진행될 많은 사업들은 어떤 종말을 맞을까.)



환경공부를 하고 있자면 이런 폐허의 이미지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개발(Development)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은 양립 가능한 말인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뭔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경제(economy)는 뭔가? 그렇다면 대안으로 나온 생태적 경제(ecological economy)는 어떤 점에서 대안인가?

이런 물음에 부딪칠 때면 나는 언제나, 현 체제에 문제가 있어 나온 대안 역시 인간이 만든 제한적인 것들이고, 이미 존재하는 문제 많은 프레임에 다른 재료만을 슬쩍 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저렇게 전부 폐허가 되고 말 텐데.

하지만 그래서야 세상이 멸망할 때 사과나무를 하나 더 심는 마음가짐이 되겠냔 말이다. 수송이 필요했던 이 곳에서도 남은 것이 애잔함뿐이라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의 이유 없는 파괴 정도는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이익이 오지 않더라도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어쩌면 환경을 공부하며 혹은 세상을 알아가며 희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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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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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영아 재밌다. 기대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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