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의 청핀(誠品)서점 둔난점은 낮보다 밤이 더 활기차다. 24시간 문을 여는 이 서점의 ‘골든타임’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퇴근길에 들른 직장인부터 데이트를 하는 커플,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 등 다양한 이들이 찾아온다.

 

좋은 책은 외롭지 않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좋은 책 주변에 모여든다. 책을 보러 왔다 커피를 마시며 얘기도 나누고, 문구나 생활용품을 사기도 한다. 인파를 쫓아 서점 입구에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들어섰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과 문화와 경제 활동이 선순환한다.

 

이 서점이 특별한 이유는 24시간 문을 열기 때문만이 아니다. 도서관처럼 꾸며진 서가 곳곳에 수백개의 의자가 있다. 잡지나 화보 같은 고가의 서적도 밀봉해놓지 않는다.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잘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이라고 판단되면 잘 보이는 진열대에 배치한다. 3개월간 팔리지 않는다고 창고에 넣지도 않는다. 서가를 15도 정도 기울여 위쪽에 꽂힌 책을 편하게 꺼낼 수 있게 했다. 책을 파는 것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중시하는 이 서점의 경영 방식에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다.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이곳을 아시아 최고의 서점으로 선정했다.

 

청핀서점을 창립한 우칭요우(吳淸友) 회장이 지난 18일 타이베이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사업가 정신을 되새기는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우 회장은 중화권 최고 재벌이 아니다. 지명도도 높지 않다. 그러나 서점을 인문학 공간으로 창조해냈다. 애도 움직임은 대만보다 중국 본토가 더 뜨겁다. 조급한 성공과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시대에 고귀한 정신을 가진 사업가라는 이유에서다.

 

우 회장은 생전 “돈이 없으면 청핀서점이 살아갈 수 없죠. 그러나 문화가 없다면 나 또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 책에서 값진 보석을 발견하게 하겠다”고 했다.

 

서점 이름은 우 회장의 아버지가 지었다고 한다. 재물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정성(精誠)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 담겼다.

 

청핀서점에 대한 대만인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대만 작가인 룽잉타이는 “청핀서점의 성공은 우리가 인문학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룽 작가는 “서점은 책과 문구를 파는 상점으로 전락할 수 있지만 우칭요우는 생활의 미학과 문화의 지표로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몇 년 전 우칭요우는 한 강연에서 “뭔가를 진정 이해하려면 최소 20년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67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8년간 청핀서점에 정성을 들였다.

중국 본토인들은 우칭요우 같은 사업가가 없는 점을 애석해하고 있다. ‘대만에는 우칭요우가 있지만 우리에겐 뤄전위(羅振宇)밖에 없다’는 한탄도 나온다. 인기 인터넷 방송인 ‘로직사유’의 진행자인 뤄전위는 문화와 인문학을 내세우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문화 장사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은 최근 무인 편의점을 선보였다.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항저우에 세워진 이 편의점은 종업원 대신 인공지능이 관리한다. 매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고객의 얼굴을 인식하고, 센서와 위치 추적 시스템으로 고객을 관리한다. 물건 값은 휴대전화 속 전자페이로 자동 결제된다. 무인 편의점은 손쉽다.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서는 번거로움도 없다. 그러나 사람은 사라지고 거래만 존재한다. 문화는 없고 기술만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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