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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뒤에 가짜뉴스(fake news)가 있다. 전부 다는 아니다. 물론 일부는 괜찮은 사람들이다. 어디 보자. 한 30% 정도는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군기지에서 열린 연방수사국(FBI) 내셔널 아카데미 졸업식에서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가리키며 졸업생들과 생중계로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한 말이다. 가볍게 미국 언론인의 70%는 가짜(fake)가 돼 버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워싱턴에서 지켜본 트럼프 정부 1년은 불안하고 실망스러웠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배타적 백인 민족주의로 조금씩 휩쓸려 가는 미국은 더 이상 다양성을 원동력으로 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 우선주의만큼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올 한 해 자주 사용한 단어는 ‘가짜뉴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한 케이블 채널 인터뷰에서 “미디어가 내가 만든 용어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가짜란 단어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가짜뉴스란 단어는 19세기 말부터 사용됐다. 물론 이 용어를 세계에 유행시킨 당사자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다. 영국 사전출판사 콜린스는 지난달 2일 올해의 단어에 가짜뉴스를 선정하고, 지난 1년간 사용 빈도가 365% 급증했다고 밝혔다.

 

가짜뉴스는 본래 언론 보도를 가장해 온라인 공간에서 퍼지는 거짓되고 선정적인 정보를 말한다. 전통 언론의 영향력을 추락시키고 현실을 왜곡하는 가짜뉴스의 폐해는 심각하다. 당장 미국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가짜뉴스를 활용해 지난해 미국 선거에 개입했다고 결론 내린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란 말을 자신을 비판하는 주류 언론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며 의미를 비틀었다. 존 로이드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안 현실(alternative reality)을 만들어냈다”며 “언론인들의 실수는 가짜뉴스 공격으로 증폭되고, 주류 언론은 거만한 엘리트들이 소외된 이들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공격은 권력 견제라는 언론의 기본 기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할 정치권력의 언론 무력화 시도가 수정헌법 1조로 언론의 자유를 명시한 미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16명이 직접 고발한 성추행 의혹을 보도해도 그는 가짜뉴스라고 역공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98일 동안 하루 평균 5.5개의 거짓말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했다. 가짜뉴스 공격은 포퓰리즘을 무기로 집권한 ‘피노키오 대통령’이 고안한 자기방어 수단인 셈이다.

 

미국의 퇴행은 전 세계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 세계 15개 권위주의 국가에서 인권탄압 등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기 위해 가짜뉴스 공격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군 감옥 인권실태를 고발한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를 “우리는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반박했고, 중국 인민일보는 인권운동가 고문 주장에 “트럼프가 옳다. 가짜뉴스는 적이다”고 대응했다. 가짜뉴스가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된 셈이다.

 

가짜뉴스 공격이 통하는 배경에는 주류 언론들의 신뢰 추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민의 신뢰 회복은 언론의 몫이다. 하지만 오만한 언론이 밉다고 언론의 권력 견제 역할까지 무시해서는 안된다. CNN 보도의 형평성에 불만이 있더라도 CNN을 때려눕히는 동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는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폐해는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