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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엔(廣辭苑)은 일본의 대표적인 국어·백과사전이다.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1955년 초판을 간행한 이래 누적판매 1190만부를 자랑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6판이 나왔다. 1991년 4판 이후엔 개정할 때마다 항목을 늘려왔다. “일본어로서 정착한 단어”를 엄선해왔다고 한다.

 

최근 이와나미쇼텐은 고지엔 7판을 내년 1월12일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개정판은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7판은 24만개 항목이 실린 6판보다 항목이 약 1만개 더 늘어난다.

이와나미쇼텐이 공개한 고지엔 7판에 추가되는 단어를 보자.

 

‘아프리’(앱), ‘후릭쿠’(flick·터치 패널 화면을 살짝 밀어 조작) 같은 정보기술(IT) 용어나 iPS세포(만능줄기세포) 등 과학 용어가 많이 포함됐다. 그만큼 IT·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대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노리노리’(경쾌한, 기분 좋은), ‘갓쓰리’(실컷) 같은 단어나 ‘오히메사마닷코’(공주님 안기)처럼 대중문화에서 유래한 단어도 추가됐다.

 

뜻이 새로 들어간 단어도 있다. ‘호켄’(보험)에는 “잘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는 별도 수단”이라는 뜻이 더해졌다. “보험을 들어놓는다”고 말하는 우리와 비슷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사회 분야 신조어다. ‘블랙기업’은 고용 불안 상태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말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한국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이 직장에서 당하는 괴롭힘과 부당한 처우를 뜻하는 ‘마타니티 하라스멘토’(maternity harassment), 결혼 활동을 뜻하는 ‘곤카쓰’(婚活),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나는 냄새인 ‘가레슈’(加齡臭) 같은 신조어에선 저출산·고령화나 여성차별 등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를 엿본다. 주일미군이 오키나와에 배치한 수륙이착륙기로, 종종 사고를 일으켜 일본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오스프리’도 추가됐다.

 

새로 포함되는 단어 가운데 일본 언론이 제일 먼저 드는 건 ‘안전신화’다. 1990년대 이후 크고 작은 사고가 반복되면서 ‘안전대국’ 일본에 대한 신뢰는 조금씩 깎여나갔다. 결정타를 먹인 사건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다.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본 원전의 ‘안전신화’는 붕괴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현대를 특징지은 ‘확실성’은 끝났다”는 기사를 실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일본은 또 다른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메이드 인 재팬’(일본산)에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모노즈쿠리(장인정신) 신화’다. 일본 고베제강의 알루미늄·구리 품질 조작에 이어 닛산자동차와 스바루의 무자격자에 의한 출하 전 검사 등 대표적 제조기업의 부정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부정이 30~40년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고품질과 안전성을 내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제조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사건의 폭발성 여부에 따라 ‘모노즈쿠리’라는 항목에 새로운 뜻이 추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고지엔에 새로 추가되는 단어는 지난 10년간 일본 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함) 같은 신조어들이 사회의 일면을 날카롭게 집어냈다.

 

그러고 보면 고지엔 7판에 ‘손타쿠’(忖度·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다)나 ‘국난’(國難·나라가 존립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에 새로운 뜻이 더해지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손타쿠’는 “(아베 총리 등) 윗사람의 뜻을 알아서 기다”라는 뜻이, ‘국난’에는 “꼼수 해산 비판을 막기 위해 갖다붙인 명분으로, 북한 위협과 저출산·고령화를 가리킴”이라는 뜻이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