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 순수문학상 중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은 여류소설가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36)는 편의점 점원이다. 무라타는 18년 동안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오고 있는 36세 독신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편의점 인간(コンビニ人間)>으로 이 상을 거머쥐었다. 편의점은 작가 무라타에게 삶의 터전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처럼 편의점에서 매주 3일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다. 


일본에는 무라타처럼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 정규직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형태로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프리터’라는 용어까지 존재한다. 


무라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 등에서 일하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편의점 등에서 일을 해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최저임금이 있고, 최저임금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올려주려고 노력하는 정부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2012년 12월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에 많은 힘을 쏟아왔다. 최저임금을 매년 올려온 아베 정권은 올 들어 최저임금을 사상 최대폭으로 인상했다. 도쿄(東京)지역의 최저임금은 932엔(약 1만409원)이 됐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취업난’이라는 말이 없다.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대졸자와 고졸자의 취업률이 97%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졸업 예정자들은 2~3개 기업으로부터 합격 소식을 받아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사는 나라를 지옥으로 표현하는 ‘헬닛폰’과 같은 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취업에 성공한 사람을 포함한 승자가 차지한 세상을 ‘천국’으로 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세상을 ‘지옥’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도 없다. ‘취직활동’만 열심히 하면 마음에 드는 직장을 잡을 수 있고, 설사 직장을 얻지 못하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23일 서울 상명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일자리 본부가 마련된 학생회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대학 졸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어두운 나날을 보낸다. 대기업이나 공직·공사 등 안정된 직장을 잡은 사람들은 ‘천국행 티켓’이라도 확보한 듯 좋아하지만, 취업에 실패한 사람들은 사실상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요즘의 취업시장에서 ‘내년을 기약하라’는 말처럼 잔혹한 말이 또 있을까. 용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사회생활을 시작해보라고 어깨를 두드려줄 수 있을까.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 무라타처럼 시급을 받으면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라도 있다면 어떻게 버텨보라고 하겠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길 낭떠러지뿐이다. 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마도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뜻하는 ‘헬조선’과 같은 말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연설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질책했다. ‘헬조선’ 등의 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질책에서는 이 세상 그 어디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 절실하게 삶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에 대한 인식의 결여, 그리고 애정의 결여가 느껴진다.

 

대통령은, 그리고 정부는 ‘헬조선’과 같은 신조어를 비판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일할 곳을 늘리고 그들이 받아야 할 임금을 올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세계가 두려워하는 ‘진짜 헬조선’으로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