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는 공화당의 새 건강보험법안, 일명 ‘트럼프케어’다. 트럼프 대통령은 1호 행정명령으로 ‘오바마케어’ 폐지와 대체를 선언했다. 이후 공화당은 하원에서 새 건강보험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제 상원에서 자체 건강보험법안을 만들어 표결을 앞두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공화당 지도부는 집권 한 달 만에 오바마케어를 폐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

 

건강보험 제도는 ‘러시아 스캔들’이나 북한 핵·미사일 위협 등에 비해 미국인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다. 게다가 공화당이 추진하는 건강보험법안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크게 축소하는 데 맞춰졌다. 건강보험 재원 마련을 위한 부유층에 부과하는 세금은 감면해주고 정부 재원을 통한 메디케이드 지원은 삭감, 폐지한다는 게 기본 방향이다. 가입 강제조항도 사라지고, 기존 질병 보유자에 대한 보험사의 차별도 인정된다. 의회예산국(CBO)은 이미 공화당 법안으로 10년 안에 2300만명이 보험을 잃을 것이란 평가를 내놨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공화당의 건강보험법안 때문에 “매년 9·11 테러보다 더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비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제품 쇼케이스’에 참석해 텍사스에서 생산된 카우보이 모자를 써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좀비 법안’이란 비아냥까지 들으며 법안 수정을 거듭하고 있지만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52명의 공화당 의원들 중 3명만 반대하면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17일(현지시간) 이미 4명이 반기를 들었다. 메인주가 지역구인 수전 콜린스 의원과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73%의 지지를 보냈던 캔자스주가 지역구인 제리 모란 의원은 타운홀미팅에서 유권자들의 거센 항의를 경험한 후 법안 반대를 선언했다. 결정타는 강경파들이 날렸다. 마이크 리, 랜드 폴 의원은 수정안이 오바마케어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며 반대를 선언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미국의 오바마케어 폐지 논쟁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특수성이다.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는 나라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케어는 보편적 복지와 미국적 현실의 절충이었다. 공공보험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전 국민을 민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만든 게 오바마케어의 기본 발상이다. 하지만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OECD 국가들 중 “미국의 기대 수명은 이미 고소득 국가들에 뒤지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미국의 의료복지는 열악하다.

 

현실이 이런 데도 미국의 집권당은 국민 건강보험을 국가가 아닌 시장에 맡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은 오바마케어 방어에 주력하고 있을 뿐 보편적 복지로서의 건강보험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샌더스 상원의원이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단일 건강보험제도인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를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울림이 약하다. 몇몇 주에서도 자체적으로 공공보험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주정부가 보험료 징수와 의료혜택지급을 일괄담당하는 단일보험체계 도입 법안이 상원 통과 후 하원에서 막혔다. 뉴욕·콜로라도·네바다주도 최근 보편적 복지 개념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은 <미국 예외주의>란 저서에서 미국은 유럽에 비해 훨씬 덜 복지 지향적이고, 덜 국가주의적이며, 더 방임주의적이고, 더 권리지향적이고, 더 애국적이며, 더 도덕주의적이고 종교적이란 점에서 ‘예외적’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주의 경험이 없는 미국의 예외주의는 립셋의 평가처럼 양날의 칼이다. 미국의 장점이자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의미다. 특히 건강보험 개편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논쟁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