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확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90분간 만났다. 18년 만에 이뤄진 북한 고위 당국자의 백악관 방문과 미국 대통령 면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백악관 마당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과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 번의 회담으로 끝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며 추가 회담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측에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미 정상회담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과정(process)이라는 말을 아홉 번이나 사용했다. 앞서 김 부위원장과 고위급회담을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키워드도 과정과 진전(progress)이었다. 즉각적인 핵폐기, 일괄타결 등을 강조하던 트럼프 정부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정상회담 한 번으로 북핵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말이 많다. 민주당 성향의 주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정상회담 성공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정 언급 다음날 ‘트럼프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한반도 계획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비판했다. CNN은 ‘(이번) 정상회담은 (실패의) 데자뷔 우려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이미 실패한 단계적 해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싱크탱크의 강경파 전문가들이 회의론 전파의 전면에 섰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뉴욕타임스에서 “정상회담이 과정이라는 언급 자체가 즉각적인 비핵화 확약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북한에 대한 양보”라고 평가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4일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이 정상회담 극장에서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얼마 전 국무부 대변인 브리핑에서 한 미국 기자가 “어떻게 북한 같은 독재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따져보면 정상회담 목표 현실화를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본질적으로는 이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논조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현실을 보는 한 모든 것은 위장이고 쇼일 뿐이다. 트럼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지만 현실적인 대안 제시는 없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북·미 관계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생존의 문제가 걸린 한반도 당사국 시민들의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한반도 전문가다.

 

북핵 협상은 과정일 수밖에 없다. 70년간 이어진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 문제를 ‘원샷’에 해결한다는 구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선 핵폐기, 후 보상’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 항복 요구이지 협상안이 아니다. 리비아식 핵폐기 주장은 회담의 판을 깨려는 강경파들의 의도적 도발이란 음모론이 제기될 정도다. 영어 속담에 ‘완벽함만 추구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Perfect is the enemy of good)’는 말이 있다. 이는 완벽함에 이르는 게 너무 어렵다며 어떤 일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전략적 인내’라는 멋진 말로 포장한 채 북한 체제가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던 정책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 사이 북한은 핵탄두를 미국 본토로 날려보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했고, 미국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닌 상황이 됐다.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완벽한 해법은 없다. 일방적 항복을 요구할 게 아니라 윈윈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상대가 있는 협상의 기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 맞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