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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또다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몇 년 째 태국에서 정정불안이 반복되고 있는데. 대체 이번 일은 왜 발생한 것인지, 맥락을 차근차근 짚어봅니다.


사진 Bang Kok Post


발단은 탁신을 위해 추진된 '사면법안'


발단은 지난해 11월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잉락의 오빠이자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전 총리 등에 대한 사면 법안을 추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 이후로 계속돼 온 태국의 정치적 혼란 이면에는, 왕실과 군부를 정점으로 한 엘리트 기득권층과 탁신을 상징으로 하는 반기득권층의 싸움이 숨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이후 정치상황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지난해 11월 1일 새벽 4시에 잉락 총리가 이끄는 프어타이 당 중심의 하원이 사면법안을 통과시킵니다. 며칠 뒤 방콕 등 여러 곳에서 반탁신 진영이 탁신 사면 반대 시위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잉락이 일주일 만에 사면법안을 철회했습니다.


사면법 철회 뒤에도 정부 '셧다운'을 시도한 반탁신 시위대


‘옐로 셔츠’라 불리는 반탁신 시위대는 방콕 등지에서 잉락 반대시위를 계속합니다. 의회에서는 잉락 불신임안을 추진합니다만, 부결됩니다. 그러자 반정부 시위대는 군 사령부로 몰려가 군의 개입을 촉구합니다. 이때만 해도 쁘라윳 짠-오짜 육군 참모총장은 “군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시위대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계속해서 군부를 끌어들이기 위해 시위대는 소란을 일으키죠. 11월 30일부터 12월 1일 사이에 ‘옐로셔츠’ 시위대가 친탁신 ‘레드셔츠’ 시위대와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잉락,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 발표


12월 9일 잉락은 의회 해산을 선언하며, 이듬해 2월 2일 조기총선을 실시한다고 발표합니다. 이때부터 반정부 시위대가 본색을 드러냅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면, 잉락의 친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쿠데타로 내쫓긴 게 2006년이었지요. 탁신의 부패의혹이 적지 않았으나 어찌 되었든 탁신은 선거로 국민이 뽑은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이 군을 동원해 내쫓았습니다. 


그 후 지난 8년 간 여러 정권이 교체됐습니다. 탁신계도 있고 반탁신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탁신계는 모두 총선을 치러서 집권한 것이었고, 반탁신계는 군을 등에 업고 의회 투표 등으로 총리를 내놨습니다. 혹은 군인 출신이 옷만 갈아 입고 집권하거나. 바꿔 말하면 2006년 탁신 축출 뒤 실시된 모든 선거에서 탁신계가 이겼다는 겁니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었습니다.


총선 거부하는 반탁신계 


그러니 반탁신계가 집권하려면 총선이 아닌 다른 방식이어야 합니다. 잉락이 조기총선을 하겠다고 했지만 반탁신계는 거부했습니다. 반탁신 진영은 총선 없이 국민협의회라는 것을 구성해 향후 12~18개월 동안 개혁 작업을 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총선은 치러졌고, 잉락이 이끄는 푸어타이 당이 다시 이겼습니다. 하지만 반탁신 기득권층 중심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3월 21일 “총선이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효 결정을 내립니다. 사실 총선이 일부 지역에서 치러지지 못했던 것은 반탁신계의 방해 때문이었는데 말이죠. 


이후 친탁신-반탁신 시위대가 맞붙고, 곳곳에서 소요가 심해집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4월말 이후가 되면 잠잠해져 가던 중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잉락 해임 결정


2011년 총리실이 국가안보위원회(NSC) 위원장을 경질하고 경찰청장 출신 인사를 그 자리에 앉힌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청장 자리에는 탁신의 처남이었던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헌재는 이것이 직권남용이라면서 지난 7일 총리 해임 결정을 내립니다. 잉락은 다음날 저항하지 않고 총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역시 기득권층에 장악된 국가반부패위원회가 이미 물러난 잉락의 탄핵안을 상원에 보냅니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향후 5년간 잉락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탁신을 쫓아낸 뒤에도 탁신계 정당을 모두 해산하고 지도부의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면 탁신계의 다른 인물이 새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서 승리하고, 그러면 또 몰아내고 새 인물들도 정치활동을 금지시키는 악순환이었는데 이를 다시 추진한 겁니다.


군의 '전격적인' 쿠데타


잉락이 물러난 뒤 정국은 총리 대행 체제로 정국이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0일 쁘라윳 육군참모총장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처음엔 쿠데타는 아니라고 했던 쁘라윳은 22일 쿠데타임을 공식 인정합니다. 23일 새벽에는 쁘라윳이 급조된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POMC)의 위원장과 총리 대행을 겸직한다고 발표합니다. 이어서 잉락을 출두시켜 잠시 구금했습니다. 


잉락은 다시 풀어줬지만, 미디어를 전면 통제하며 공포정치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TV·라디오 정규방송은 중단됐습니다. 군부는 비판하는 언론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헌법 효력은 정지됐고 상원은 총리지명권을 포기했습니다. 사실 상원은 반탁신계가 많았으니 군부에 권력을 헌납하기 위한 '자발적 포기'라고 봐야겠죠. 관광대국인 태국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선포됐고, 시위대엔 발포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또 다시 쿠데타 추인한 국왕


엄청난 위기 상황도 아니었는데 군은 이미 물러난 잉락을 압박하고, 잉락 퇴임 뒤 만들어진 임시내각도 모두 몰아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지도부가 정부를 모두 장악했습니다. 26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쿠데타를 추인했습니다. 


종합하면, 기득권층 국가기구와 시스템이 총동원돼 탁신계를 제거하는 과정이 반복된 것입니다. 잉락 정부를 제거했지만, 반탁신계로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처지입니다. 또 질 것이 뻔하니까요. 반탁신계에는 내놓을 만한 정치 지도자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2008년 반탁신계가 의회에서 밀어올린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의 경우는 사실상 영국에서만 살다 와서 태국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했을 정도일까요. 


그래서 잉락이 물러났음에도 왕실의 물밑 후원을 받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당분간 군정통치를 한 뒤 총선이 아닌 방식으로 반탁신 정권을 창출하려는 계산을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군부 지도자 쁘라윳, '강경 왕당파'


쿠데타를 일으킨 쁘라윳은 ‘극단적인 왕당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0년 반탁신 정부가 탁신을 지지하는 시위대를 유혈진압해 사실상 학살을 저지른 적 있는데요. 당시 쁘라윳이 군 내에서도 가장 강경하게 유혈진압을 지지했다고 하지요. 


태국 군은 1855년 설립돼, 주변 아시아국가들에 비하면 1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군은 이런 자부심과 함께 왕실의 수호자라는 명분을 늘 강조해왔습니다. 실제 태국 헌법은 군의 역할로 국가주권의 수호와 함께 ‘왕권 보호’를 명기하고 있습니다. 군과 왕실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손잡고 권력을 지켜왔습니다.


국제사회는 쿠데타를 비난하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등은 일제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비판했습니다. 미국은 제재 가능성도 시사했다. 하지만 미국이 원조를 보류하는 식으로 제재한다 해도 보류할 수 있는 원조액 규모가 10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아니면 군사 협력을 잠시 중단하는 수준인데, 압박 수단이 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가 태국 군부에 민정 이양 일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군부가 당장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다만 이번엔 2006년 탁신을 축출한 쿠데타 때와는 다른 점이, 군부가 주요 언론을 통제하고 있어도 SNS로 반군부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태국 국민들은 이 정치적 위기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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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