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렸다. 수상자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52년간의 내전을 끝낸 자국의 평화협정을 가리켜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산토스는 반군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과 체결한 평화협정이 10월2일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충격을 받았지만, 나흘 뒤의 노벨평화상 선정 소식은 표류하는 배에 불어온 순풍과 같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쉽지 않은 과정을 콜롬비아의 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신은 놀라움을 맛보게 하려고 모든 능력을 시험대에 올려놓기로 작정”하고 “사람들이 흥분과 실망, 의심과 깨달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만든 듯하다”고 묘사한 대목에 빗댔다.

 

부결 뒤 산토스는 반대자들과 만나 요구사항을 듣고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과반수 국민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려 시도했다. 그리하여 정부와 반군조직이 마련한 새 협정안은 원래 협정의 57개 조항을 거의 모두 수정했다. 반군조직의 자산 신고와 양도, 해당 자산의 내전 피해자 보상금 활용, 10년 기한의 과거사 정리 기구 설치,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의 마약 거래 관련 자진 신고와 조사, 무력 충돌의 발생지에서 새롭게 획정된 선거구에 반군조직원의 입후보 금지, 반군조직원의 정치 참여 지원금 삭감 등이 포함됐다.

 

수정 협정안 역시 일부 반대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예컨대 반대자들은 전쟁 범죄 연루자들의 정치 참여 금지를 강력히 촉구했지만 정부는 그 주장을 사실상 평화협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가망성 없는 조치로 보고 새 협정안에 넣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수정 협정안은 11월30일에 상하원 모두 반대표 없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150일 내에 반군조직의 모든 무기가 유엔에 넘겨지고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해산과 동시에 합법적인 정치 운동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경험상 전쟁의 수행보다 평화를 이루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고 확언하면서 산토스가 평화협정 과정의 교훈과 향후 과제를 제시한 수상 연설의 내용은 두고두고 곱씹을 만하다. 무엇보다 그는 갈등의 종식을 적의 괴멸과 동일시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며, 비폭력적 대안이 존재하는데 무력에만 의존해 최종 승리를 꾀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패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산토스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평화의 첫걸음은 반군조직원들을 철천지원수가 아니라 그저 상대방으로,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산토스는 협상 과정이 대중매체의 흥미 위주 보도로 흐르지 않도록 신중하게 비밀리에 진행한다는 원칙을 지켰고,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담하며 흔히 인기 없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밝혔다. 더욱이 그는 콜롬비아가 여전히 안고 있는 다른 난제와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로 시야를 확대했다. 그는 콜롬비아가 세계 최대의 지뢰 매설 국가 중 하나이고 지뢰 폭발의 피해자가 가장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2021년까지 지뢰 제거 작업에 매진할 것을 약속했다. 아울러 그동안 폭력과 부패를 양산해온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이것이 시급히 전 지구적 차원의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략의 수정을 제의했다.

 

산토스는 마약과의 전쟁을 교육을 통한 사고방식의 계발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폭력과 배제의 문화를 관용과 공존의 문화로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34년 전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염원했듯이 “100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 인간 군상들이 세상에서 마침내, 영원히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될 새롭고 광범위한 삶의 유토피아”를 꿈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콜롬비아의 평화협정이 갈등과 불관용 탓에 어려움을 겪는 세계 여러 곳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선사하길! 앞으로 콜롬비아인들이 10배는 더 어렵다는 협정의 실행 과정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되길 기원한다.

 

박구병 아주대 교수 서양현대사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