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지나갔다. 가족과 함께 연휴를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미국인이 5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대이동의 연휴였다. 대도시의 주요 간선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났고, 주요 공항에서는 비행기 연착이 잇따랐다. 대도시에서 공부하는 조카도, 다른 주에 살고 있는 삼촌도 고향 집에 모였다. 연휴를 이용해 따뜻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았다.

 

명절 연휴에 모인 가족이 즐겁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대화가 있다. 노총각·노처녀 결혼 이야기, 중·고등학생 성적 비교만큼이나 짜증을 유발해 화기애애한 가족 만찬을 망칠 수 있는 화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정치 이야기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8~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화로 정치가 일등으로 꼽혔다. 종교나 돈 문제보다 정치를 더 입에 올리기 싫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61%가 정치 대화는 가장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해 여야 구분이 없었다. 인종적으로는 66%가 정치 대화가 걱정이라고 답한 백인들이 가장 조심스러웠다. 백인 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가장 심각하다는 의미다. 최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 조사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백인들의 여론은 지지 47% 대 반대 49%로 극명하게 갈렸다. 트럼프만 생각하면 짜증부터 나는 민주당 지지자 조카와 미국 노동자들이 못살게 된 것은 이민자들 때문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트럼프 열성팬 삼촌이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정치를 논해봤자 싸움밖에 날 게 없다.

 

대선 직전이었던 지난해 추수감사절 가족모임 때는 “선거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한마디면 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인 올해는 다르다. 세제 개편, 오바마케어 폐지, 이민 문제 등 논쟁적인 이슈들이 널려 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해도, 성추행 문제를 개탄해도 모든 게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로 귀결된다. 언론들은 추수감사절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충고를 내놨다. NBC는 “올해 추수감사절은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며 ‘추수감사절 정치 이야기에서 살아남는 법’ 7가지를 충고했다. 정치 대화를 가능하면 피하고, 불가피하다면 상대방의 자극적 언사에 반응하지 말라는 게 핵심이다. CNN도 에티켓 전문가를 동원해 ‘가족 연휴 식사 자리에서 정치 대화 방법’ 5가지를 소개했다.

 

명절 모임에서 정치 대화를 피해야 한다는 충고는 일반론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짜증 유발자로 전락한 현실이 갈수록 악화된다면 문제가 된다. CNN의 지난해 조사에서 추수감사절 저녁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렵다는 응답은 53%, 정치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응답은 43%였다. 하지만 올해 NPR·PBS 조사에서는 정치 대화가 두렵다는 답변이 58%로 늘었고, 기대한다는 답변은 31%로 크게 줄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민주당 지지자들의 절망감이 커진 것도 원인이다. 민주당 지지자 중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다른 생각을 듣는 게 흥미롭고 정보가 된다는 답변은 28%에 불과했고, 짜증나고 절망적이란 답변은 63%나 됐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현안에 대한 생각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조사에서 현재 미국 정치권의 담론이 긍정적이란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부정적이란 평가가 50%, 분노가 느껴진다는 답변은 36%였다.

 

트럼프 정부 첫해가 한 달 남았다. 화합보다는 편가르기에 집중하고, 지지층 확장은 포기한 채 ‘개탄스러운 사람들(deplorables)’의 이탈을 막는 데만 주력하는 대통령이 있는 한 정치는 계속 갈등의 원인으로 남을 것이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고, 서민들 건강보험 혜택 축소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공화당도, 그런 공화당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도 갈등 유발자다. 미국에서 정치가 미래를 선도하기보다는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볼수록 강해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