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에서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남북 정상의 합의문에 중국과 미국 등 제3국이 등장하고 이들의 역할과 시한까지 명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중과 사전에 협의된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남북 모두 매우 빨리 일을 진행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정전체제가 끝났음을 확인하는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가는 로드맵을 상정하고 있다. 종전선언은 한국전쟁이 끝났음을 확인하는 정치적 선언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전에 관련국 정상들이 모여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고 일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절차다.

 

문재인 정부가 법적 구속력도 없고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 종전선언을 그것도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하기 전인 ‘입구’에서 하려는 이유는 이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진작시키고 미국을 이 정치적 약속에 묶어두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비록 구속력은 없지만 정상들의 공개적 약속이어서 그 무게감은 결코 작지 않고 북·미 모두 이탈하기 어렵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제외한 미 행정부의 참모들은 모두 조기 종전선언에 부정적이다. 현실은 여전히 정전체제에 머물고 있는데 각국 정상이 이미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커다란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태도변화가 미국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군사적 행동 가능성에 대한 우려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종전선언은 협상 과정에서 대북 군사적 옵션 포기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 극적 효과를 발휘하려면 ‘입구’가 아닌 ‘출구 직전’에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비핵화·관계정상화·평화협정 발효를 마지막 순간에 동시에 한다고 해도 기술적으로는 일정한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는 생명줄과 마찬가지인 핵무기를 버리는 순간이므로 극도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단계다. 이때 각국 정상이 종전선언이라는 정치적 약속으로 ‘마지막 고개’를 넘을 수 있는 탄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종전선언에 누가 참여하느냐도 문제다. 판문점선언에서는 평화협정 논의 과정에서 가급적 중국은 마지막 순간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속내가 드러난다. 중국이 개입하면 일을 빠르게 진척시키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평화협정 논의에서 중국은 주한미군 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 매우 부담스럽다.

 

하지만 정상 간 합의 문서에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을 적시한 것은 문제다. 이에 자극받은 중국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일 다롄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유관 각국과 함께 역내 영구적 평화를 실현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이 1994년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철수했기 때문에 당사국으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지만 이 같은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중국은 군사정전위에서 철수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의해 쫓겨났다. 한·중 수교를 했으니 군사정전위에 남아 있으면 안된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로도 중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 지위를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또한 법적 지위 여부와 무관하게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극적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것도 중요하고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한 정치인들이 만들어가는 일인 만큼 관련국 모두 국내 정치적 계산이 없을 수 없다. 실제로 국내 정치적 효과는 일을 추동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반도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은 극도로 세밀하고 신중하게 다뤄나가야 한다. 조급함과 정치적 욕심을 조금 자제하고 차분하게 한발씩 전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빠른 진전이 아니라 다시 뒷걸음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견고한 진전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