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핵 관련 발언이 부쩍 줄었다. 최근 20일 동안의 북핵 언급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하다”는 지난 1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 발언이 전부다. 끊임없이 설화에 휘말리면서도 입놀림을 쉬지 않던 그의 갑작스러운 신중한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큰 틀의 정책 변화를 앞두고 입조심한다는 인상이 든다.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남한에 파견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승부수다. 북한판 북핵 출구 전략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남한과 미국의 보수층은 위장 평화공세에 속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김정은의 카드가 너무 크고 무겁다. 지금 북한이 핵무기 대신 언어와 외교를 대외 정책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은 명백한 대화 신호다. 트럼프의 선택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북한 삼지연 악단의 공연에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에게 북핵은 숙명이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핵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핵은 또한 그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한민족의 생존과 미국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위기이지만 해결한다면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트럼프에게 북핵이 제공하는 또 다른 기회를 잡으라고 권하고 싶다. 바로 노벨 평화상이다.

 

북핵이 왜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 기회가 되는가. 그것은 북핵이 노벨 평화상의 ‘메달밭’이기 때문이다. 45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지미 카터, 버락 오바마 등 4명이 노벨 평화상을 탔는데 이 중 북핵과 관련해 상을 탄 사람이 카터와 오바마 등 2명이나 된다. 북핵 문제가 심각할수록 미국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은 노벨상과 인연이 없었다. 평화에 대한 열망이 절실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기회가 주어진 탓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운이 좋다. 북핵은 전 세계적인 평화 이슈로 부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평화파괴자’ 이미지의 트럼프에게 노벨 평화상이라니 가당치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이해한다. 이란 핵합의 파기, 인종차별적 이민정책 등 반평화적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패권국으로서 제공해야 할 국제 안보와 자유경제질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패권국 지위는 유지하려는 대외정책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일탈적 대외정책을 트럼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측면도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시작된 미국의 쇠퇴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 자격 문제에도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루스벨트부터 보자.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아기곰을 살려준 ‘테디 베어’ 일화의 그 루스벨트가 맞지만 대외정책에서는 철저히 약육강식 논리를 신봉했다. 그의 수상 이유는 러일전쟁 뒷마무리 중재였지만 이는 사실상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묵인해준 것이었다. 만약 한국인들이 노벨상 심사에 관여할 수 있었다면 목숨 걸고 그의 수상을 반대했을 것이다.

 

윌슨 역시 노벨 평화상 취지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의 식민지를 가로채는 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언젠가는 국제사회가 지원해 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안고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우다 스러진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면 그의 노벨상 수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노력을 평가받은 오바마 역시 ‘전략적 인내’ 대북정책으로 북핵을 사실상 방치했다. 사실 노벨 자신도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던 세계 최대의 무기상으로, 인류 평화를 거론할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더구나 트럼프는 임기가 3년 남은 현직 대통령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다.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면 대전제가 필요하다. 반드시 평화적인 북핵 해결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평화상의 취지에 반한다. 그러자면 ‘힘을 통한 평화’ 같은 대외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갑작스러운 노선 전환이 쉽지 않겠지만 이는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대외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트럼프의 정치적 지지기반이나 성향을 고려할 때 그의 노벨 평화상 도전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성취나 업적은 망상적 도전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다. 나라면 트럼프의 유독 강한 인정욕구와 명예욕에 걸겠다. 트럼프라고 노벨 평화상을 못 탈 이유가 없다. 마침 평창 올림픽 덕에 그 기회의 문도 열려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