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시진핑 주석에게 큰 선물이었다. 중국은 더 이상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지 않게 됐다. 시 주석으로서는 황제의전과 2억원짜리 마오타이주 선물이 아깝지 않을 터였다. 중국 언론의 ‘중국 역할론’ 대서특필에서는 ‘한반도 지분’ 복원에 대한 안도감이 엿보인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치밀하게 연출한 기획임에 틀림없다. 김정은은 용의주도하게 “나의 첫 외국 방문이 중국이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하며 조·중 친선은 나의 의무”라며 시 주석의 체면을 한껏 세워주었다. 방문 시점도 절묘하다. 중국이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및 비핵화 논의에서 소외되고, 미국의 통상압박과 대만접근 문제가 불거지면서 원군이 절실하던 차에 김정은이 등장한 것이다.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주변 국가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점에 제공하는 이런 외교술을 나는 ‘선물 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베이징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의 선물 대장에는 시진핑만 있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름을 올렸다. 정치적 궁지에 몰린 가운데 중간선거를 맞은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표명은 가뭄 속 단비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설이 도는 것을 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조만간 수혜자가 될 것 같다. 한반도 주변국 정상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만이 아직 선물을 받지 못했다. 북핵 문제를 극우정치의 동력으로 삼다가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타 정상들과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 김정은과 국제사회를 연결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 정치는 북한 내부에서 비롯됐다. 북한 정권 탄생 이래 지도자와 엘리트층이 특권과 충성을 주고받는 구도로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 민생은 들어설 틈이 없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집권 첫 공개 연설에서 “인민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번영을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나이 어린 독재자가 우쭐해서 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후 그의 행보는 일관성이 있었다. 핵무기와 경제번영을 동시에 추구하는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했고, 선물 정치의 우산 아래서 거대한 부패자본가로 성장한 특권 집단에 철퇴를 가했다. 인센티브제와 장마당 활성화 등 잇단 경제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도 단행했다. 김정은이 선대 유산인 선물 정치에 종언을 고하고 민생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졌다.

 

아마 김정은이 내부 선물 정치에 안주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북한은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은 채 겨우 생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의 북한이 아니다. 휴대전화가 500만대 이상 보급될 정도로 외부 정보에 노출된 북한 주민은 기아선상에서도 항의 한마디 못했던 부모 세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개 장소인 동평양대극장에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따라 부르고 자신들의 삶이 척박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신세대다. 계기가 주어진다면 잠재적인 정치 불만세력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이 아니더라도 선물 정치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국가번영 목표를 버리고 핵무장을 하거나 비핵화하고 번영국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외견상 김정은은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선물 정치의 요체는 핵무장과 비핵화 두 가지다. 상충하지만 둘 다 있어야 선물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본질적 의문은 남는다. 핵무장 선언 직후 비핵화할 거였다면 애초 뭐하러 핵무장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그간의 광기 어린 핵개발 폭주와 위협적 언동을 돌아보면 이런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아직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물론 김정은이 비공개적으로는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가 미국 내에서 비핵화 의지에 문제제기가 나올 때마다 “진정성이 있다”며 김정은을 대변하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은 김정은을 믿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은 20여일, 북·미 정상회담은 두 달가량 남았다. 그의 진심과 전략을 확인할 시간도 머지않았다.

 

하지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선물은 주고받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계속 주기만 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김정은의 비핵화 선물에 국제사회도 의미 있는 선물로 호응하며 한반도 평화를 엮어가야 한다.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선물이 체제안정이라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