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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자민당 정권 출범 100일째를 맞는 아베 총리는 여러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닮았다. 조국근대화의 주역인 박정희 대통령 못지않게 그의 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쇼와(昭和)의 요괴(妖怪)’로 만주국 창설의 주역이고 A급 전범 출신으로서 정계에 복귀하여 전후성장의 기틀을 다진 총리로서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부친은 외무대신을 지내고 총리 일보직전에 건강문제로 좌절한 권세의 정치가이다. 이렇듯 화려한 혈통의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미국을 방문하여 자신의 조부와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이 절친이었기 때문에 향후 한·일관계는 순항할 것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두 정상이 통할 만한 또 다른 공통점은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를 추구해 왔다는 데 있다. 이들은 보수주의에 기반을 둬 투철한 국가관, 안보, 애국심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공히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를 좋아하는 이유다. 


아베 신조는 2006년 9월부터 1년간 총리를 지낸 바 있다. 5년간 장수 총리로서 개혁 전도사로 인기를 누렸던 고이즈미 총리의 후계자로 지목된 그는 좋은 미디어 이미지와 대중적 인기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총리직에 오른 후 우정민영화에 반대하여 고이즈미가 축출한 반개혁파 의원들을 복당시키고, 본인과 가까우나 부패한 인물들을 입각시켜 여론의 질타를 불러왔고 결국 차례로 하차하여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또 애국주의 교육과 국가안보시스템 개혁에 몰두하여 정작 대중이 원한 경제문제를 도외시하였다. 고이즈미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계승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였으나 의지와 능력 양면에서 준비 부족으로 실패의 길을 걸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작년 12월 총선거에서 아베는 자민당의 대승을 이끌고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제1차 아베내각의 실패를 교훈삼아 경제에 올인하면서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아베노믹스란 이름으로 공격적인 양적완화정책을 추진한 결과, 엔화가치는 20% 하락하고 주가는 20% 이상 상승하였으며 올 1분기 성장률은 전년 대비 3.2%로 예상되고 있다. 출범시 40%의 내각 지지도는 70%로 훌쩍 뛰어올랐다.


대외관계에서도 아베 총리는 미·일동맹 강화, 군사력 강화, 영토 문제에 단호한 대처를 강조하고 있으나 우려하던 우익적 정체성의 정치, 정책과는 선을 긋고 있다. 개헌을 통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승격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겠다는 선언은 아직까지는 선언에 그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멈추고 명시적인 반(反)중전선을 취하지 않는 외교적 세련미도 보여주고 있다. 인사정책 역시 반대자이자 경쟁자인 이시바 시게루를 당 간사장으로, 다니가키 사다카즈와 이시하라 노부테루를 내각에 등용하는 탕평인사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38일간의 고단한 행군은 유감스럽게도 제1차 아베내각을 답습하는 듯하다. 인사실패를 반복하면서 국정 여기저기서 복고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아베 총리의 경우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하며 와신상담, 선전할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에게 재도전의 기회는 없다. 아베 총리의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고, 현재를 주의 깊게 참고하여야 한다.



아베 총리와 통화하는 박근혜 대통령 (경향DB)



박 대통령은 정부요직, 산하단체장, 공기업 수장, 재외공관장 등 많은 인사를 앞두고 있어 수첩인사를 접고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물을 포괄하는 탕평인사를 실천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교훈은 신정부의 정책방향이다. 북핵의 위협으로 안보 국면이 지속되고 있으나 지난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는 먹고사는 문제에 이어서 정책의 중심은 여기에 두어야 한다. 창조경제란 모호하고 준비 안된 슬로건에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대선 때 내건 알기쉬운 민생경제를 이어가야 한다. 일자리 증대, 경제적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 확대, 물가 및 집값 안정, 사교육비 절감 등 민의 경제적 삶을 향상시키는 정책과제에 총력을 기울일 때 지지율 반등의 기회가 올 것이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