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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설이 지나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후보 사퇴 뉴스가 나온다.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유엔을 위해서나 잘된 일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한 달 뒤쯤 나올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고, 헌재에 상식이 있다면 탄핵을 인용할 것이니 대선이 코앞이다. 이번 대선 당선자는 두 달간의 인수위도 없이 바로 취임하니 모든 일정이 숨 가쁘게 돌아가게 생겼다. 정책은 원래 중요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적으로 준비가 잘된 후보를 뽑아야 할 이유가 늘어났다.

 

바다 건너 미국은 야단법석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미국 우선주의라는 이름 아래 아예 내놓고 인종주의적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온 세상이 놀라고 양심적 미국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안 그래도 불안한 한반도는 과격한 트럼프의 등장으로 더욱 불안하게 되었다. 앞으로 4년이 무사할지 정말 좌불안석이다. 미국 학자들은 벌써 트럼프를 탄핵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데, 아무쪼록 성공하기 바란다.

 

어쩌다 트럼프 같은 자질 미달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해 11월 대선 직후 버락 오바마는 대선 패배 원인으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예를 들어 위스콘신주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는 등 파고드는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과연 그럴까?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를 못 본다는 말이 있다. 민주당의 패인은 바로 오바마에게 있다. 오바마가 8년 집권하면서 도무지 뉴딜적 정책을 내놓지 않고 좌고우면으로 일관한 것이 근본 패인이다. 오바마 집권 당시의 상황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집권 상황과 비슷했다. 공화당의 장기 집권으로 부자감세, 규제완화, 친기업, 반노동적 정책이 빚은 양극화가 극에 달하여 공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변화’(Change)라는 선거구호를 내걸고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이 루스벨트와 오바마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통해 미국 사회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 반면 오바마는 뉴딜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변화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광범위한 중산층, 노동자의 민심 이반이 이번 대선에서 승패를 갈랐다. 분노한 백인 중산층, 노동자들이 오바마, 클린턴이 미워서 트럼프를 찍은 것이지 트럼프가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니다. 두 후보의 선거구호가 힐러리는 ‘희망’, 트럼프는 ‘변화’였으니 기묘하지 않은가.

 

만일 미국 민주당이 버니 샌더스라는 진보 정치인을 후보로 내세웠다면 샌더스는 백인 중산층, 노동자들의 표를 대거 얻어 트럼프를 이기는 게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만만히 보아 클린턴이 쉽게 이길 것이라 낙관했고, 샌더스는 과격한 이방인이라고 보아 배척했는데, 그게 치명적 실수였다. 그런 판단 착오로 미국은 앞으로 4년간 크게 후진할 것이며, 전 세계인이 고생할 것이며, 한반도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샌더스의 대선 공약은 주로 네 가지였다. 첫째, 월가를 철저히 규제하겠다.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이 월가이니 당연한 공약이다. 그 반면 미국 국민들은 월가와 친한 힐러리가 집권하면 월가 규제는 물 건너간다고 보았다. 둘째, 주립대 등록금의 무상화, 셋째, 민간 중심의 의료보험체제를 공공 의료보험체제로 바꾸는 것, 넷째, 최저임금 인상과 남녀 동일임금이다.

 

네 가지 공약은 유럽이라면 하나도 과격할 게 없는 내용이지만 시장만능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보수적 미국에서는 상당히 파격적, 급진적 공약이었다.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되었더라면 많은 개혁이 이루어져 약자들의 얼굴에 햇살이 비쳤을 것인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트럼프의 폭주에 시달리게 생겼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미국과 비슷하게 심한 불평등에 빠진 나라 한국은 어떤가? 나는 미국과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샌더스가 등장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체제가 가져온 독재의 유산, 적폐를 씻어내고,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할 개혁적 인물을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재벌의 병폐까지 치유해야 한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은 권력과 유착하여 사적 이익을 도모하면서 예사로 부패를 키우고,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다.

 

기업가와 노동자는 국민경제의 주인공으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황제처럼 군림하는 재벌 총수는 나라의 골칫거리일 뿐이다. 극우파가 70년 지배해온 나라의 적폐를 해소하고, 재벌을 개혁하고 불평등을 해소할 한국의 샌더스는 과연 누구일까? 흔히 언론에서 치켜세우는 능력과 경륜을 갖춘 인물은 허상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좌고우면하는 원만한 후보나 마당발 같은 노회한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다. 철두철미 개혁을 해내고, 철저히 서민, 약자 편에 서줄 루스벨트나 샌더스가 필요하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