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나선다. 21세기 세계사에 기록될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 첫발을 떼면서, 이제 시선은 ‘평양’으로 향하고 있다. 양국의 수교가 이뤄지면, 북한만이 미국의 유일한 적대국가, 평양만이 미국 대사관 없는 수도로 남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십년간 미국의 국익을 증진해 나가는 데 실패해온 낡은 접근방식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은 그동안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쿠바 정부가 자국민들을 억압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53년 동안 유지해 온 쿠바 봉쇄정책이 실패한 것임을 공식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쿠바 봉쇄정책을 대폭 완화한다는 방침 아래 조만간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재개설할 것임을 밝혔다. 쿠바의 테러지원국 해제 검토, 쿠바 여행과 송금 제한 대폭 완화, 다음달 이민 대화 공식 착수 등의 조치도 지시했다. 국교 정상화 추진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조만간 방문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카스트로 의장 역시 전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교 정상화 논의를 선언했다. 바야흐로 양국 간 모든 현안을 일괄 타결하겠다는 기세다. 국교 정상화 추진 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태평양 건너 남의 잔치를 축하하면서 기뻐할 수만도 없다. 북·미관계의 현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북·미관계도 꿈틀거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마지막 남은 미수교 국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정부는 쿠바 사례를 원용해 상황 전개와 북한의 태도를 봐가며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군중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 하루 전날인 지난 16일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주석(왼쪽),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다. _ 로이터


최근 들어 북한이 미국인 억류자들을 풀어주면서 북·미관계에 해빙 기류가 형성되는 듯한 느낌이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이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간접 전달하면서, 북·미관계 변화가 주목됐다. 대니얼 러셀 미국 동아·태차관보는 12월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중 공동과제와 협력 전망’ 세미나에서 ‘북·미 대화를 하는 데서 주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성 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북한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쿠바는 북한이 형제국가라 칭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미국과 적대관계를 형성해온 점도 유사하다. 북한은 자국만이 미국과 적대국가로 남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북·미관계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이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행보를 하게 만드는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북한이 미국에 대해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처럼 대북 적대시 정책도 실패했음을 인정하라는 주장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국제적인 고립에 처해 있는 김정은 체제에 대미관계 개선에 적극 나오라는 신호로 읽힌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라는 큰 산을 넘기 어려운 시점에,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상한 지금, 당장은 북·미관계 개선이 뜬구름잡기일 수 있다.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해법이 윤곽을 잡을 때,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도 첫출발은 뜬구름 위에서 시작됐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향후 남북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강대강(强對强)의 대결구도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보다 차가워질 것은 자명하다.

해방 70년을 맞이하는 세모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북·미관계, 남북관계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한과 교수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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