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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다. 그런데 새로운 한·일 관계의 미래를 그리기에 앞서 드는 생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이다. 실제로 양국 정상은 미래를 말하면서도 현재 한·일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 간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고 협의가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솔직히 잘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의 언행을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 문제가 난관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사안이 아니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깊이 연관된 법적 성격을 가진 사안이다. 한국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개입한 만큼 법적인 책임을 지고 그에 따른 조치를 피해자들에게 취할 것을 원한다. 일본은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강제성이 있었음을 공식 인정했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됐다’는 입장은 한번도 바꾼 적이 없다. 법적 책임과 배상을 인정하는 것은 한일청구권협정의 근간을 흔들고 전후 질서를 바꾸는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처음부터 일본에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하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위안부·사할린 동포·원폭 피해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공식입장을 정리했을 때도 일본에 이를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위안부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청구권협정에 따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 존재 여부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강일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국제소송과 한일수교 50년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출처 : 경향DB)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배상과 사죄를 하면 가장 좋겠으나 그간 일본의 태도와 국내 분위기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과 국가의 개입이 있었음을 재확인하도록 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법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법적 책임 부분을 한국이 양보하고 일본이 기금을 조성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의 법적 책임이 해결됐다는 것을 전제로 한 해법에 한국 정부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청구권협정 3조에 의거해 중재위원회를 여는 방법이 있지만 양측 모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 방법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

어쩔 텐가. 위안부 문제는 이처럼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위안부 문제 협상의 마지막 단계’는 어떤 방안의 어떤 단계를 지칭하는 것인가. 애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이나 한·일 관계 새 출발을 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선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입구에 갖다놓을 선결 과제가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진전과 함께 관계 개선이 이뤄진 결과로 해결되어야 하는 장기적 과제였다.

정부는 지금 위안부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듯하다. 위안부 해결이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유흥수 주일 대사의 최근 발언이나 정부의 ‘분리대응론’이 이를 말해준다. 한·일 관계가 지금 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지게 된 책임을 어느 일방에게만 묻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하지만 정부가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실패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강경일변도 대응으로 임기 초반의 중요한 시간을 허송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부의 위안부 접근법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 외교 관료, 전문가, 언론은 모두 공범이다.


유신모 외교전문 기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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