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대선 경선 참여를 염두에 두고 2006년 <담대한 희망(Audacity of Hope)>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한국에서도 2007년에 번역출판이 되어 한국 정치인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8대 국회가 개원한 2008년 5월부터 다음해 4월 사이에 국회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됐을 정도였다. 이 책의 인기 비결은 분명하다. 오바마는 2004년 처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불과 2년 만에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했고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정치인 입장에서 보면 오바마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고속성장의 본보기다. 정치인으로서는 그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피닉스 어워드 만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제 임기가 끝나가는 오바마는 더 이상 영감을 주는 정치가는 아니다. (오바마의 대통령으로서의 성공도 논란거리이다. 특히 대북정책, 중동정책 등의 대외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담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당시 오바마의 성공은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오바마의 성공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대부분의 잠룡들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우선 현재 한국도, 대외적으로 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지고 국내적으로 서브 프라임 위기가 발생하던 당시 미국에 못지않게,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미국처럼 1만㎞ 이상 떨어진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곳에서 재앙으로 이어질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더 심각하다. 큰 변화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선 1년여를 앞두고도 유권자에게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변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신뢰를 얻은 후보는 아직 없다. 지금이라도 그럴 수 있는 인물에게 현재 지지율과 관계없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역사에서 가장 단기간에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 과제를 완수한 사람이 오바마였다. 그 비결은 ‘담대함(audacity)’이라는 표현에 숨어 있다. 물론 오바마가 했던 말을 따라 한다고 선거에서의 성공을 반복할 수는 없다. ‘담대함’이라는 말도 그 의미가 상당히 오염됐다. 이를 무슨 거창한 희망,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바마는 매우 어렵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를 ‘담대함’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듣기 좋은 말을 앞세운 다른 정치인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고 그 표현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담대함’이라는 표현은 오바마가 전국적 인물로 떠오르게 했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 제목으로 먼저 사용됐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허츠 버그는 “오바마가 이 연설문을 썼으면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가 연설문을 쓰지 않았다면 이처럼 위대한 연설문을 쓸 수 있는 참모를 발굴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찬사를 보냈다. 오바마의 이 연설이 유권자의 마음을 울렸던 것은 그 내용이 훌륭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바마가 당시 미국 내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였던 이라크 전쟁에 처음부터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던 이력이 그의 말에 신뢰를 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2008년 봄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오바마가 유력한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당시 미국 정치권에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2002년 10월 미국 상원이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안에 대한 투표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물론이고 조 바이든, 존 케리 등도 찬성표를 던졌다. 힐러리 클린턴은 지금도 이 투표에 대해 해명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놓고 오바마가 일리노이주의 주 상원의원에 불과했기에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맞는 지적이다. 쟁쟁한 연방 상원의원들에 비해,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도 잃을 것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눈앞의 이해관계와 대중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때 더 큰 변화의 흐름을 보고, 민초의 정서와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다. 담대함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잠룡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이 같은 담대함이다. 무엇이 되겠다는 욕망이나 듣기 좋은 말을 앞세우기보다 민초의 어려움을 같이 느끼면서 미래를 선취하는 구체적인 비전과 행동이 필요하다. 지지율에서 잃을 것이 많지 않은 대부분의 잠룡들이 이 같은 도전을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