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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어머니로부터 “대처를 본받아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대처는 잡화점집 딸로 태어났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결국 영국의 총리가 되었단다. 얼굴도 예쁘고 옷도 세련되게 잘 입지 않니?”


그녀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어서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한국의 대처’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영국에서 실제 생활하면서 접한 대처에 대한 평가는 한국과는 정반대였다. 영국 보통 사람들의 대처에 대한 반감은 충격적이었는데, “대처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악담을 하는 영국인도 있었다. 


말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힘들게 투병하는 대처를 동정하기보다는 극심한 빈부격차, 지역과 세대 갈등, 금융위기 등 영국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이 대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냉정한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지리학자인 나는 대처를 인간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싶어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 중부의 소도시 그랜섬을 찾았다. 역사·문화유산이 풍부한 영국의 전통 도시와는 달리 그랜섬은 황량하고 삭막한 분위기였다. 대처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대처가 태어난 잡화점은 마사지숍으로 변해 있었고, 그랜섬에서 만난 소녀들은 고향 선배인 대처를 부끄러워했다. 


대처는 총리 재직시절 영국병뿐 아니라 영국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도 함께 없앴다는 비판을 받았다. 차가운 과학자이자 편협한 모범생이었던 그녀는 축구경기를 보며 술을 마시는 노동자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지식인들, 돈 버는 데 전혀 도움이 안될 것 같은 문화·예술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대처에게는 수치화할 수 있는 실적,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세계가 전부였던 것 같다. 


나는 영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던 대처의 진심을 믿고 싶다. 실제로 대처 시대를 거치며 영국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했고, 경제 수치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지만 거듭되는 행운과 일시적인 성공에 도취된 대처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졌다. 그녀는 아이에게 우유를 사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부모들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고,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파업을 벌이다 숨진 탄광 노동자들을 외면했고, 낙후된 축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다 목숨을 잃은 축구팬들을 폭도로 몰며, 슬퍼하는 유가족을 위로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영원히 당당할 것만 같던 ‘철의 여인’ 대처가 숨을 거두었다. 유명 정치인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딩동! 마녀가 죽었다’는 제목의 노래가 영국 아이튠즈 음악 다운로드 및 아마존 싱글차트 상위권에 갑자기 등장했다. “경쟁과 효율을 강조했던 대처의 뜻을 기리기 위해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입찰에 부쳐 최저가에 낙찰시키자”는 조크가 유행하고, 수백만파운드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처의 장례비용을 아끼려면 “대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삽만 쥐어 주면 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몰려와 땅을 파고 무덤을 만들어 줄 테니…” 등등의 냉소가 난무한다. 대처의 죽음에 대한 평범한 영국 사람들의 솔직한 감정, 감출 수 없는 속마음인 듯해서 씁쓸하다.


대처 영국 전 총리 사망 환영 (경향DB)


역사가들은 그녀를 위대한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그녀의 업적을 높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처의 서거 소식에 일부 영국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샴페인을 터뜨렸다고 하니 대처가 안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죽음은 언제나 서글프다.



김이재 |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