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총리로서 진주만을 방문하는 것은 최초.”(5일 일본 정부 관계자)

“현직 총리로서 애리조나기념관에서 (희생자를) 위령(추도)하는 것이 최초.”(7일 외무성 외무보도관)

“(현직 총리가) 미국 대통령과 함께 진주만을 방문하는 것도 최초.”(26일 정부 대변인)

 

일본 정부가 27일(미국 시간)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사진)의 ‘업적 쌓기’로 분주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지난 5일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이 결정된 이후 ‘현직 총리로서 최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허풍이었다. 1951년 9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한 이후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총리(1956년 10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1957년 6월) 등이 잇따라 진주만을 찾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자 외무성의 가와무라 야스히사(川村泰久) 외무보도관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현직 총리가 애리조나기념관에서 추도하는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26일 아베의 출국을 앞두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미국 대통령과 함께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자신의 업적을 쌓기 위해 외조부인 기시 전 총리의 흔적마저 지우려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조부의 과거 행적을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최초’ 등의 업적에 매달리는 이유는, 개헌을 최종 목표로 설정한 그가 ‘역사적인 총리’임을 강조하고 싶어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6일로 출범 4주년을 맞은 아베 정권은 현재 6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58%로 나타났다. 한때는 기시 전 총리의 외손자로서 ‘가문 정치의 후계자’ 혹은 ‘도련님’ 이미지가 컸지만 이제 아베는 장기집권을 바라보며 외조부를 능가하는 치적을 쌓으려 애쓰고 있다. 자민당은 3년씩 2연임만 가능했던 총재 자리를 3년씩 3차례까지 연임할 수 있도록 최근 당규를 바꿔 아베 장기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는 ‘아베 1강(强)’의 리더십 구조 속에서 그가 내년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 이를 바탕으로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개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진주만 방문에 굳이 거짓말까지 보태가며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이려 애쓴 데에서 보듯, 아베의 최대 치적은 외교다. 올해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평화기념공원 헌화를 이끌어냈고, 한국과는 논란 많은 위안부 합의를 이뤘다.

 

지난 16~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숙원이던 북방영토 반환을 약속받지 못해 여론이 악화됐다. 그러나 푸틴이 10년 만에 도쿄를 방문하게 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지금은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아베 정권의 앞날은 경제에 달려 있다. 엔저를 기조로 한 아베노믹스 덕분에 기업 이익이 늘면서 대기업들이 임금인상과 고용 확대에 나선 것은 아베에게 힘이 됐다.

 

그러나 아베가 애써 끌어내린 엔화는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같은 국제적인 이슈가 불거질 때면 급반등한다. 주가는 회복됐지만 소비는 4년 내내 살아나지 못했다.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다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미국 덕에 안전을 누리는 일본이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무역 면에서도 보호주의로 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아베가 평화헌법을 뜯어고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을 쏟지 않겠지만, 전통적인 동맹들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트럼프 시대 미·일 관계가 아베의 복병이 될 수 있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