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은 완전히 다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공통점이 있다. 외교 관료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 관료들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반대로 한국 외교관들은 모두 친미 성향의 수구적 성향을 갖고 있는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믿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리기후변화협약 등 대외 협정에서 탈퇴하고 이란과의 핵문제 합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등 미국의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부정했다. 이 같은 결정은 전문 외교관료와 국무부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반도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잘 알면서도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는 동아·태 차관보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새로운 주한 미국대사를 위한 임명 절차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8개월이 지나도록 국무부는 주요 보직이 채워지지 않아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방치되고 있으며 외교 관료들과의 반목이 커지면서 국무부는 사실상 기능부전(機能不全) 상태에 빠져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서도 외교관과 외교부에 대한 불신이 도드라진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겪었던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외교부와 외교관들에 대한 매우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 외교안보수석 등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송민순·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전문 외교관에 대한 배신감도 작용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대선에서 한때 문 대통령에게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였다. 송 전 장관도 의도했든 안 했든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를 곤경에 빠뜨렸다. 또 윤병세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외교장관으로 발탁돼 마지막까지 박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탔다. 지금 여당과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외교관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외교부 ‘적폐청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외교관 배제’로 모아지고 있는 것은 문제다. 미·중·일·러 등 이른바 ‘주변 4강국’ 주재 대사를 모두 비외교관 출신인 학자·정치인으로 채운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조윤제 주미대사 내정자가 “한·미 정상 간 ‘정직한 메신저’가 되겠다”는 임명 소감을 밝힌 대목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 존재했던 외교관 출신 대사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는 또 외교관 출신이 아닌 다른 분야 인사를 대사로 발탁하는 ‘특임 공관장’을 전체 3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직업 외교관이 아닌 ‘믿을 만한’ 민간인 적임자를 찾느라 정권 출범 6개월이 넘도록 공관장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여파로 공관장 인사와 맞물려 있는 국장급 인사도 기약 없이 늦어져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됐던 간부들은 몸과 마음 모두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그야말로 ‘영혼 없이’ 근무하는 중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불신은 외교부가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민들 기대를 배반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논란,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 방치 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외교부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적폐’는 근본적으로 정권의 잘못일 뿐 정권의 명령을 받아 수행한 일개 부처에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은 아니다. 특히 전문성과 경험을 키워온 직업 외교관을 배제하는 것이 능사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지금과 같은 안보위기 상황에서 경제학 교수를 주미 대사로 보내고, 대일 외교는 일본 문제에 생소한 캠프 원로에게 맡기고, 주재국 상황보다 국내 정치에 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정치인을 중국·러시아 대사로 임명하는 식으로 외교가 풀릴 리 없다.

 

공무원(civil servant)은 말 그대로 국민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고 정책이 바뀌면 새로운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이다.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정해주고 임무를 부여하면 관료는 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관료제다. 외교관 전체를 적폐 세력으로 간주하고 생각이 같은 사람만 골라서 쓰겠다는 태도는 관료제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교부 조직을 개방해 외부 인사 영입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외부 인사의 능력을 평가하고 공정하게 발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머릿수만 늘리는 것은 ‘낙하산 논란’을 불러올 뿐이다.

 

한국을 둘러싼 대외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외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외교부의 기능을 외면한 채 자기 사람만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는 외교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