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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명물 ‘둥피’가 사라졌다.

베이징 동물원 의류 도매시장의 줄임말인 ‘둥피(動批)’는 중국 북부 지역의 최대 의류 집산지다. 1990년대부터 동물원 근처에 들어서기 시작한 의류 도매상가는 10여개로 늘어났다. 도매시장이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동물원에 판다 구경 가는 게 아니라 옷 구경하러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베이징 관광 코스 중 하나로도 꼽혔다. 둥피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3만명, 일일 방문객 수는 10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베이징시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둥피는 지난달 30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상가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둥딩(東鼎)이 이날 마지막 영업을 했다. 정리 세일 기회를 잡으려는 알뜰 소비자들과 사라져 가는 둥피의 마지막 모습을 담으려는 시민들이 몰렸다. 상가에 전기가 끊긴 후까지 손님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이곳에서 설빔을 준비했다던 중년 손님과 옷을 팔아 자식을 대학까지 보냈다는 주인이 함께 추억을 풀어냈다. 그 추억들은 이날 이후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베이징의 시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둥화먼(東華門) 야시장이 문을 닫았다. 32년 만이다. 꼬치며 쌀국수를 팔던 88개 상점 주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퇴근길에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베이징 토박이들도 추억의 장소를 잃었다.

 

시장이 사라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시장으로 화물과 사람들이 몰리면서 가뜩이나 복잡한 베이징 교통에 부담이 가중된다. 시장을 외곽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베이징의 비(非)수도 기능을 인근 퉁저우, 슝안으로 옮기려는 중국 정부 정책에 부합한다.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타오바오 등 인터넷 쇼핑이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재래시장의 인기가 시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시장들은 주로 정책적 이유로 폐쇄된다. 특히 외래인구 제한이 주목적이다. 시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농촌에서 온 외지인들이다. 시장이 베이징 밖으로 이사 가면 베이징 호적이 없는 이들도 함께 외곽으로 이동한다. 베이징 상주인구를 2300만명으로 제한하려는 당국의 계획과 잘 맞는다. 둥피에 있던 대부분 상가들은 베이징 외곽인 옌지아오(燕郊)로 옮길 예정이다. 노동자들도 이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을 것이다.

 

지난달 18일 베이징 외곽 다싱구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서 불이 나 1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화재가 난 건물은 지하 창고, 1층 공장, 2층 숙소 형태로 된 영세 공장이었다. 베이징시는 이 화재 사건을 계기로 40일간 집중 안전 점검에 나섰다. 그리고 비슷한 형태의 공장에서 일하는 하층민들을 안전 미흡을 이유로 강제로 쫓아내고 있다. 이들은 추운 겨울에 거처도 정하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임시 거처, 이사 서비스 등을 제공하겠다고 나섰지만 당국은 이 또한 통제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매체 보도도 통제하고 있다.

 

도시 밖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고, 도시민들 사이의 교류도 단절시키고 있다. 택배 기사, 가사 도우미 등 10만여명에 달하는 하층 노동자들이 베이징 밖으로 밀려났다.

 

도시와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진화한다. 베이징 역사는 3000여년 전 춘추 전국시대 연나라 수도인 옌징(燕京)에서부터 시작됐다. 요, 금,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가 됐다. 지금의 베이징은 시장도 사람도 떠나간 적막한 곳이 돼 가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의 ‘도시병’을 걱정하면서 핵심 행정 기능과 베이징 호적을 가진 ‘필수 인구’만 남길 태세다. 사람과 온기가 없어지고 기능만 남은 베이징은 도시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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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