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발로 노예와 자유민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맨발은 노예의 비천함의 표시’라고 했다. 노예는 신발을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스의 자유시민은 노예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누구도 신발을 신지 않고는 공공장소에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로리 롤러 <신발의 역사>)

 

 

신발은 오랫동안 부와 신분, 계급의 상징이었다. 신을 때 그랬다. 벗을 때는 달랐다. ‘태업’이라 번역되는 사보타주(sabotage)는 프랑스어 ‘사보(sabot·나막신)’에서 연유한 말이다. 중세 유럽 농민들이 영주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해 수확물을 나막신으로 짓밟은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공장주에게 항의할 때도 나막신을 활용했다. 나막신을 벗어 기계에 던져넣어 가동을 멈추게 한 것이다. 신발이 은유하는 또 다른 이미지는 ‘저항’이다.

 

2008년 12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한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신발 세례를 받았다. 이라크 기자 문타다르 알 자이디가 기자회견장에서 미국의 침공에 항의하며 두 차례 신발을 던졌다. 부시 대통령이 재빨리 피해서 맞지는 않았지만 ‘신발 투척’ 사건은 전 세계적 화제가 됐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누군가에게 신발을 던지거나 신발 밑바닥을 보이는 일은 최악의 모욕이자 경멸의 표현이다. 신발은 반미 시위의 상징이 됐고, 알 자이디는 아랍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재판에 회부돼 9개월간 복역한 그는 오는 12일 치러지는 총선에 도전장을 낸 상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달 초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신발 디저트’를 대접받았다고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부부가 만찬을 마련했는데, 초콜릿 디저트가 신사구두 모양 그릇에 담겨 나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문화적 결례’라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한 고위급 외교관은 현지 언론에 “일본인들은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요리를 맡은 이스라엘 셰프 세게브 모셰는 “(디저트를 담은 용기는) 신발 모양의 주조 금속으로 만들어진 고급 예술품일 뿐, 진짜 신발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아베 총리는 이 해명을 수긍했을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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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