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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집으로 신문대금을 받으러 오는 신문 배달원이 있다. 신문을 구독한 지 반년이 넘다보니 안면이 꽤 익숙해졌다. 신문대금을 전해주는 짧은 시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예전에는 한국인 신문 배달원도 많았는데, 지금은 몽골이나 네팔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다가 필자가 한국 기자라는 것을 알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북한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최근 일본인을 만나면 이런 질문이 어김없이 나온다. 북한의 긴박한 정세가 일본인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8월과 9월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상공을 잇달아 통과했다. 일본 정부는 전국순간경보시스템(J얼럿) 등을 통해 홋카이도 등 12개 현 주민들에게 피란을 권고했다.

 

이런 북한 정세를 ‘국가 존립의 위기’를 뜻하는 ‘국난(國難)’으로 끌어올린 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다. 그는 북한 정세를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함께 ‘국난’으로 꼽고, ‘꼼수 해산’으로 비판받는 조기 중의원 해산을 ‘국난 돌파 해산’이라고 강변한다. 거리 유세의 3분의 1 이상을 북한 문제에 할당한다. 10일 시작된 12일간의 공식 선거전에도 “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아베 정권이 ‘한반도 위기론’을 부채질해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줄곧 제기돼왔다. 그 정점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발언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북한 비상사태 시 대량난민 유입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무장난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자위대가 출동해 사살할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처럼 ‘한반도 위기론’을 강조해온 아베 정권이 정치공백을 발생시킬 수 있는 조기 총선을 감행한 건 실소를 자아낸다. 북한 대응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큰 이론(異論)이 없는 북한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아베 정권의 장기인 ‘편 가르기’다.

문제는 북풍 활용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아베 정권은 2년 전 헌법 해석을 억지로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보관련법을 통과시켰다. 자민당 내에선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론’은 물론 ‘핵 무장론’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쟁 포기와 전력(戰力)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겠다고 표명하고 있다.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는 최전선에서 애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민의 선택’을 이유로 이런 움직임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전쟁가능한 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베 대항마’로 꼽히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지사가 선전해도 마찬가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전쟁을 염두에 둔 국가 만들기’에 이해가 일치한다.

 

정치권이 당파적 목적을 위해 북한 위기론을 부채질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도 ‘개전 전야’ 같은 분위기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북한 탄도미사일이 상공을 통과한 홋카이도에서 700㎞ 넘게 떨어진 나가노(長野)현까지 피란 경보가 발령됐다. 미사일이 홋카이도에서 2200㎞ 떨어진 태평양에 낙하한 뒤에도 방송국은 정부 발표를 반복해 내보냈다. 정부와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위기를 부추기면서 사회 전체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묻히고 있다.

 

한때 한국에서 보수·수구세력의 ‘전가의 보도’로 쓰였던 북풍이 바다 건너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게 아이러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비상시국이니 국민은 하나가 돼야 한다”면서 비판 여론에 족쇄를 채우고, 태평양 전쟁을 향해 돌진했다. 역사의 망령이 현대 일본에서 되살아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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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