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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21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나가타초에 있는 민주당 본부는 들뜬 분위기로 술렁거렸다. 중의원 해산 선포를 불과 2시간 앞둔 시각, 중·참의원 양원 총회에 모인 의원들의 눈빛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연일 계속된 선거 유세로 새카맣게 얼굴이 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민주당의 승리는 확실시됐고 하토야마 대표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상황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자민당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하토야마는 흔들림 없는 표정과 차분한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번 선거가 정치주도의 새로운 일본을 일으킬 커다란 혁명적 총선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장내에서는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해 8월30일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은 예상대로 중의원 전체 480석 가운데 308석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두며 54년 만에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얼마 전 도쿄특파원으로서 일본 총선을 취재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수첩을 뒤적여보았다. 거기에는 ‘자민당 장기집권과 구태정치에 대한 염증’, ‘실업률 최악…경기 침체’, ‘격차 확대’와 같은 단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하게 내리던 총선 다음날 민주당에 거는 기대를 쏟아냈던 일본인들을 만났던 일도 다시 떠올랐다. 그들의 말에서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힘으로 여당을 심판했다는 자부심이 읽혔다.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호’는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야심차게 출발했다. 하지만 신생 민주당 정권은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문제점들을 속속 노출하기 시작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가벼운 입’ 때문에 당초 내놓았던 공약과 정책들은 갈팡질팡했다. 내각과 충분한 조율이나 재원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추진한 공약은 대폭 축소, 또는 철회됐다. 하토야마 총리의 정치헌금 허위 기재,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정치 자금 스캔들은 유권자들에게 부패정치의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출범 무렵 한때 70%에 달하던 지지율은 20%대까지 폭락했다. 급기야 정권 교체 8개월 만에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투톱’ 하토야마 총리·오자와 간사장이 동반 퇴진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등한 미·일 관계’는 양국의 갈등을 초래했고 오키나와현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마찰을 표면화시켰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와 관련해 하토야마는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다 결국 안팎의 압력에 굴복해 ‘오키나와 현내 헤노코 이전’에 합의했다. 이에 반발한 사민당은 연립에서 이탈하면서 하토야마 실각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가운데 터진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은 민주당 정권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결국 2012년 12월 민주당은 3년3개월 만에 자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100석도 못 건지는 참혹한 패배가 민주당이 받아든 성적표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 설치된 선거 상황판 앞에서 총선 승리를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_ 로이터


어제 일본에서는 딱 2년 만에 다시 총선이 실시됐다. 결과는 두 해 전과 같았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야당은 그동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아베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는데도 일본 유권자들은 다시 한번 그를 밀어줬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무기력함과 대안 및 대책 부재는 일본인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보수우익의 흐름이 두드러졌던 것도 패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민주당은 이제 존재감마저 잃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리멸렬한 야당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일본 정치의 좌표는 과거 자민당 ‘1당 독주’ 시대로 되돌아갔다. 양당제 구도는 사실상 무너졌다. 이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포석을 다진 아베 총리는 자신의 종국 목표인 개헌을 향해 질주할 것이 뻔하다. 그가 내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선다면 일본은 더욱 ‘보수의 길’로 치달을 것이 분명하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군대 보유 가시화,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및 역사왜곡에 따른 주변국과 심각한 마찰도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가뜩이나 좋지 않은 한·일 관계가 한층 삐걱거릴 가능성이 크다.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은 “벼랑 끝으로 치닫는 일본의 우경화 바람에 제동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돌파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과거로 회귀해버린 일본 정치판을 보니 마음이 더욱 갑갑하다.


조홍민 국제부장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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