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명을 가를 회담이 나흘 뒤 시작된다. 세계의 눈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으로 쏠린다. 군사분계선에서 만날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가 10년 만에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음을 상징할 것이다. 세계의 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을 주시할 것이다. 그의 육성은 뒤이은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를 읽을 단서가 된다. 지금 한반도 시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앞질러가고 있다. 굵직한 뉴스가 이어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4월 초 극비리에 방북해 김정은을 만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종전’을 언급했다. 김정은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했다. 지난 1주일 동안 있었던 일이다. 남북이, 북·미가 회담장에 마주 앉기 전에 나온 예고편들이다.

 

연쇄 회담을 관통하는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요구에 북한은 답을 내놔야 한다. 미국은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과 관계 정상화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은 미국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핵개발을 서둘렀다. 65년 한반도 정전체제의 산물이다. 그래서 비핵화,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는 따로 노는 게 아니다. 한 묶음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다. 이를 상대가 먼저 입장을 굽혀야 한다는 선후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각자의 입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폼페이오의 비공개 방북은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었다. 폼페이오가 김정은의 생각을 직접 듣고 트럼프의 생각을 전하면서 핵심 의제를 조율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김정은 탐구’다. 트럼프는 남한 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 듣고 김정은의 만남 요청을 전격 수락했지만, 자신을 “늙다리 미치광이”라 부른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웬만큼의 신상정보는 파악하고 있을 게다. 그러나 회담 준비를 총괄하는 최측근 인사가 관찰한 김정은 스타일은 회담 준비에도 유용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특사로 방북하며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부여받은 세 가지 임무 중 첫 번째가 “김정일 위원장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오시오”였다고 한다.

 

18년 전에도 그랬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무르익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해 10월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냈다. 폼페이오 이전 미국 최고위 당국자의 방북이었다. 기자단 57명을 포함, 210여명의 대규모 방문단이다. 올브라이트의 첫 일정은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3시간 회담을 하고 대집단체조 아리랑을 함께 관람했다. 올브라이트는 방북 후 김정일에 대해 “남의 말을 경청하는 훌륭한 대화 상대이며 실용주의적이고 결단력이 있다”는 인상평을 남겼다. 또 “김정일은 북한의 안보와 경제지원이 보장되면 군사적 양보를 할 준비가 돼 있는,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한 지도자”라고 했다. 올브라이트의 방북 2주 전에 김정일의 대미 특사가 워싱턴으로 갔다. 군부 실력자인 인민군 총정치국장 조명록이다. 10월10일 조명록은 올브라이트와의 회담에선 정장을 입었고 클린턴을 예방할 때는 군복을 입었다. 이튿날 북·미관계의 근본적 개선, 정전협정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전쟁상태 종식을 위한 4자회담 등을 담은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당시 북·미의 상호 특사 방문과 그 결과는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란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없던 일이 됐다. 클린턴 임기 말 추진된 데다 11월7일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승리하면서다. 공화당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위대한 미국 대통령이 사악한 독재자를 찾아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클린턴의 방북을 반대했다.

 

북한과 미국 모두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서로가 최대의 준비를 해야 한다. 트럼프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될 것 같지 않다면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만난다고 해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겠다고 한다. 김정은에게 기선을 잡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방북 이후 트럼프가 한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세계적 성공이 되도록 무엇이든지 할 것” 등의 말들을 보면 김정은 면담 보고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정상회담 일정·장소는 아직 미정이다. 이를 포함해 사전에 조율해야 할 것들이 더 남았을 것이다. 이제는 김정은의 특사가 트럼프를 찾아가 ‘예비회담’을 할 필요가 있다. 협상은, 특히 북·미 협상은 신뢰를 쌓는 과정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이 6월 초에 만난다면 아직 한 달 정도 남았다.

 

<안홍욱 국제부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