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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건 5월12일이었다. 정상회담을 정확히 한 달 앞둔 시점에서다. 어느 호텔이냐, 판문점 도보다리 같은 곳이 있느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기는 한번에 날아올 수 있느냐…. 세계가 들썩거렸다. 이후가 문제다. 북·미 고위 당국자들이 거친 말을 주고받았다. 실무자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만나지도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회담 취소 편지를 보내고, 북한이 손 내밀고, 양측이 다시 만나기로 하면서 갈등은 봉합됐다. ‘회담 열차’는 다시 6월12일을 향해 트랙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회담까지 절반인 2주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준비 측면에서 진척된 게 없으니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그렇지만 남겨준 시사점도 크다. ‘세기의 담판’이라며 구름 위를 걷는 듯 들뜬 발걸음을 현실의 땅 위로 옮겨놓았다. 회담을 연다는 사실 자체가 낙관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한반도 평화를 향한 과정이 험난할 것임을 확인시켜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네수엘라에 억류됐다가 2년 만에 풀려난 조슈아 홀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우선, 이제 엄밀한 의미에서 ‘리비아 모델’이란 말 자체는 필요없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모델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으로 이해된다.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하기 전에는 미국이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리비아 모델 적용을 주장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정조준해 “일방적 핵포기 강요” 등으로 비난한 걸 보면 북한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은 리비아 모델과 다르다”고 약속했다. 큰 틀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접근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의미도 작지 않다. 북한 비핵화 과정이 ‘트럼프 모델’로 불리건 ‘코리아 모델’로 불리건, 한반도의 상황에 근거한 해법이 나올 것임을 예고한다.

 

북·미가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양측 모두 대화를 강하게 원하고 있고, 성공적 회담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가 아닌 공개 서한을 통해 회담 취소를 알리면서 “생각이 바뀌면 연락하라”고 했다. 북한이 하루 만에 ‘정중하게’ 응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들이 회담을 매우 많이 원한다. 우리도 그러기를 원한다”고 화답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더 절실한 건 북한이고, 회담이 안돼도 미국은 나쁠 게 없다고 말해왔다. 미국 내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북·미 회담에 드라이브를 걸어온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대화 포기를 선언한다면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회담 취소와 번복 과정은 북·미는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도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잠시 멈췄지만 대화 의지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협상은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기대를 낳는다.

 

무엇보다 비핵화와 보상을 둘러싼 내용과 이행 순서에 대한 북·미 간 입장차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비핵화와 보상 간 주고받기가 난제임을 확인시킨 것이다. 미국이 ‘선 비핵화’에선 한발 물러섰다 해도, 북한이 그에 버금가는 큼지막한 것을 내놔야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는 입장은 여전하다. 최단기간 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를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남한도 그러기를 바란다. 이행 과정이 길어지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과거처럼 실패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북한도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만 북한은 미국이 그 속도를 감당할 만한 조치를 취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마지막 단계에서, 동시에 마무리돼야 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데 미국도 속전속결로 끝낼 자신이 있냐는 것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즉 안보 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했는데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북·미 간 신뢰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신뢰는 일방적이지 않다. 가는 말이 곱지 않은데 오는 말이 곱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나는 하기 싫지만 너는 해야 한다고 할 수도 없다. 상호적이다. 실상 한반도의 구조적 위기도 양측이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탓이 크다. 서로가 70년을 적으로 살아왔다. 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 북·미 정상이 만나 다짐을 해도 이행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실행되지 않으면 허사다. 회담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다. 북한의 비핵화도, 미국에 의한 체제보장도 결국 불신을 신뢰로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여정의 ‘시작의 끝’이 아니라, ‘끝의 시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홍욱 국제부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