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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 것이 한국 내에서 꼼수로 비판받는 것은 ‘인신매매=민간업자의 행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내 기림비들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한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것에서 보듯 인신매매라는 말은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묘사하기 위해 곧잘 쓰이고 있다. 샤론 불로바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군수는 지난해 청사 내에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허가하며 “인신매매 범죄 (근절)은 지금도 우리 카운티의 중요 관심사이며 이것을 제대로 다루는 것이 공공안전과 인권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신매매는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삶에도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납득시키기에 유용한 개념이다.

따라서 아베의 말에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인신매매라는 표현이 아니라 그 행위의 주어가 없다는 점이다. 아베는 이 인터뷰에서 인신매매는 역사상 수많은 전쟁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라며 섣부른 보편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비극의 보편화는 책임져야 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고통을 승화하는 의미로 쓸 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위안부 할머니, '日 역사왜곡 반대' 미국학자에 감사편지 (출처 : 경향DB)


주어를 흐리는 사례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기념비 비문에서도 볼 수 있다.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이 비문에는 영·일문으로 ‘편히 쉬시기를, 다시는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이라고 돼 있다. 영문에는 ‘우리’라는 주어라도 있지만 일문에는 주어조차 없다. 과오를 저지른 주체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도 포함하는지, 일왕과 일본 군국주의자들만 의미하는지 지금도 논란이다. ‘누가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피해자들이 존재하니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적어도 전범의 직계후손이 할 말은 아니다.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책임 소재를 흐리는 수법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BBK 실소유주 논란 때 나경원 후보 대변인이 “강연 동영상을 보면 ‘내가’라는 주어가 빠졌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가 BBK를 설립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