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깊이 반성한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겸허하게 일을 추진하겠다”.

지난 2일 도쿄도의회 선거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 말들이다. 야당의 추궁에 “신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니까 (야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맞받아치던 사람이 한 말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바싹 몸을 낮춘 모습이다.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로까지 표현된 선거 결과와 지지율 추락이 어지간히 뼈아프긴 했나 보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존 57석의 절반도 안되는 역대 최저인 23석을 얻었다. 지난 10일 발표된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대 중반으로 2012년 12월 2차 내각 발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베 총리가 8월 초 ‘대폭 개각’을 서둘러 천명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위해 면모를 일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성’이니 ‘겸허’니 하는 단어에 얼마만큼의 성심성의가 담겨 있을까.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선거 이후 잇따랐다. “자위대로서 잘 부탁한다”는 발언으로 선거 참패의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지난 6일 규슈 북부에 폭우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약 1시간 청사를 떠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위대가 실종자 수색 및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현장에 투입된 상황에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베 1강’ 체제의 해이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아베 1강 체제의 ‘혼네(本音·본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또 있다. 자민당 구도 쇼조(工藤彰三) 중의원 의원은 지난 1일 지원 유세에 나선 아베 총리에게 야유를 보낸 청중에 대해 “조직범죄처벌법(공모죄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11일 시행된 공모죄법은 인권 탄압과 비판여론 봉쇄 등 ‘감시사회’ 우려가 줄곧 제기된 법안이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도 야유를 보낸 청중을 두고 “프로활동가에 의한 방해”라고 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따지고 보면 당시 지원 유세에서 아베 총리의 언행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는 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 공모죄법 강행 처리, 도요타 마유코(豊田眞由子) 중의원 의원의 비서관 폭언·폭행 파문 등 연일 터지는 불상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선거 전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두연설에 나섰다. 그런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야유를 보내는 청중들에게 “이런 사람들에게 질 수 없다”고 말했다. 울분과 분노를 표출하는 청중들을 향해 ‘이런 사람들’이라면서 국민·비(非)국민으로 편 가르기를 한 것이다. 이런 인식과 태도가 ‘반성’ ‘겸허’ 같은 말들로 가려질 수 있을까.

 

아베 총리는 ‘당장의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자’는 생각일지 모른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지리멸렬함이 계속될 것이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돌풍도 예전 민주당(민진당 전신)처럼 한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경제와 외교로 점수를 딴 뒤 다시 논란 많은 법률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면 된다.’ 아베 총리가 개헌 추진 의사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면 이 같은 추측이 억측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이런 꼼수를 꿰뚫어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런 사람들’이라고 했던 이들이 ‘아베 1강’ 독주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아베 총리는 9일 “하나하나 결과를 내가는 방법밖에 신뢰 회복의 길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만큼 중요한 게 과정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비롯,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신뢰 회복의 길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에게 이런 ‘주권재민’은 눈엣가시가 아닐까. 그러니까 난폭한 방법으로 헌법을 바꿔 전전(戰前)으로 회귀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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