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당선은 브렉시트와 닮은꼴이다. 언더클래스(underclass)에 기반하고 보수 포퓰리스트가 주도한 기득권에 대한 ‘사이비’ 반란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 언더클래스는 전통적인 하층계급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루저’로 이루어진 비정규 불안정 고용층을 포괄하는 말이다. 브렉시트와는 달리 미국의 경우 다인종국가인 까닭에 저학력 백인의 몰표가 크게 작용했다. 하나 미·영 양국 언더클래스의 품은 희망과 기대가 과연 얼마나 충족될지는 물론 미지수다.

 

트럼프가 던진 통상의제는 잘 알려져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FTA 그리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3개 통상협정이 사선에 올라있다. 여기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둑질’(theft), ‘불법적인’ 덤핑 그리고 환율조작이 더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2014년도 모습. AFP연합뉴스

 

NAFTA를 트럼프는 미국이 “지금껏 체결한 경제협정 가운데 최악의 것”이라 했다. 마찬가지로 ‘나쁜(bad)’ 협정인 한·미 FTA는 ‘일자리를 죽이는(job-killing)’ 협정이라 했다. TPP는 어떤가. “우리 제조업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미국을 외국정부의 판결에 복속시킬 것”이라 평하고, “더 이상 우리는 수많은 나라들이 포함된 대형 거래를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이 협정은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데 우리 중 누구도 읽어본 적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해법은 무얼까. 이런 ‘나쁜’ 협정들을 “전면적으로(totally) 재협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모든 생산품에 대해 45%의 반덤핑 상계관세를 부과하며 또 지재권 침해에 대해서는 불관용으로 갈 것이라 했다.

 

미국에서 알다시피 통상교섭권은 의회의 권한이다. 조약의 체결·비준권을 대통령이, 반면 이에 대한 동의권을 국회가 갖는 우리와는 판이하다. 그리고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회와 상원 재경위원회가 소관 상임위로서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미 상하 양원 모두를 공화당이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른바 ‘나쁜’ 통상협정의 재협상은 미 공화당과 대통령 사이 국내 협상이 매우 중요해진다.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해온 공화당과 그 지도부가 어느 수준까지 트럼프의 ‘전면 재협상’론에 동의할 것인지가 결정적이란 말이다. 우리가 오매불망 목을 매는 TPP 역시 그렇다. 현재의 트럼프만 봐서는 물 건너갔다.

 

클린턴이 당선되었을 경우의 초고액 TPP 가입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입장은 지켜봐야 한다. 미 통상거버넌스의 특성으로 볼 때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만으로 전면 재협상이 이루어지긴 쉽지 않다. 그렇지 않고 협정의 폐기로 간다면 예컨대 한·미 FTA의 경우 일방적인 서면통보 후 6개월 뒤 조약이 종료되어 의외로 간단하다. 수많은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조건에서 미·중 간 통상마찰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찮다. 예컨대 중국산 아이폰의 판매 후 수익을 100달러로 가정할 경우 이 중 미국이 48달러, 일본이 34달러, 한국이 13달러를 가지고 중국은 고작 5달러만 차지한다. 아이폰 수출을 통한 중국의 무역흑자와는 무관하게 이를 통해 최대 이익을 보는 것은 애플이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율의 상계관세를 매길 경우 아이폰의 미국 내 가격경쟁력을 잠식,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가 있다. 나아가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하지 않는 한 일률적인 보복관세 부과는 WTO 협정 위반 가능성이 있다.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조사에서 최종결정까지 길게는 수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4년 임기의 대통령이 임기 내에 몇 건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흔히 트럼프의 최대 약점으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꼽아 왔다. 그러나 클린턴의 확실성이 우리에게 확실한 불이익이었다면 트럼프의 불확실성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 불확실성의 공간은 어쩌면 기회의 공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클린턴만 해바라기했던 정부 측도 발상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해영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