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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동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29일 미국 의회에서 행한 연설 주제이다. 그는 이보다 앞선 4월22일에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때 ‘함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한다’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한국 언론은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전향적인 발언을 기대했다. 진보와 보수 언론을 불문하고 두 차례의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그에게 촉구해 왔다.

하지만 그는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란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마찬가지 논조는 4월28일에 열린 미·일 정상회담의 공동기자회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도 한·일간 역사문제를 현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일본에 확인해 주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으로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는 회견이었다.

아베 총리는 연설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침략이란 말 대신에 역대 총리들처럼 ‘아시아의 여러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겠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 대신 ‘인신매매’를 언급했다. 그러나 누가, 왜 고통을 주었는가에 대해 말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침략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면서도 의회 연설의 끝 부분에서 ‘국제협조주의에 기반을 둔 적극적 평화주의’를 두 번이나 말하며 강조했다. 반둥의 연설에서도 평화와 자주의 반둥정신을 언제나 지켜나가는 일본이 되겠다고 ‘맹세’한다며, ‘함께’ 살아가고, ‘함께’ 대처하며, ‘함께’ 풍요로워지는 아시아·아프리카를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빛나는 챔피언’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아베 총리는 두 차례의 연설과 기자회견에서 과거사를 직시하겠다는 의지보다 회피하려는 태도로 일관했고, 민주주의와 공동 번영, 평화를 언급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를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고노 담화를 계승하며 수정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도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니, 8월로 예정돼 있는 아베 담화의 수준과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발언하고 있는 아베 총리 (출처 : 경향DB)


아베 담화의 예고편들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그의 화법은 명확하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없고, 식민지 지배는 일본만 한 것이 아니며,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동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과거사 관련 3대 담화를 모두 수정해야 한다. 이것이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이다. 하지만 총리가 되고 보니 현실은 그의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도 사실의 힘을 근본적으로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그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평화헌법의 개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미·일동맹을 강화해 집단적 자위권과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정당화하고 있다. 장차 그것은 헌법 개정의 명분으로 활용될 것이다.

아베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계승을 말하면서도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발언을 직접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과거사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으면서 분쟁을 반대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말하고 있다. 세계를 향해 인류의 안정과 평화에 일본이 어떤 기여를 하겠다는 점을 더욱 강조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헌법 개정의 명분으로 활용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사에 대한 그의 발언에만 관심을 집중해 왔다. 일본군 ‘위안부’에 매달리고만 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주어 왔다. 역사를 매개로 지역과 인류를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지역 만들기에 필요한 미래가치와 추진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상태로 8월을 기다려야 하는가.


신주백 | 연세대 HK 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