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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각으로 12월18일 새벽 미국과 쿠바 양국의 대통령은 TV 생방송을 통해 약 54년간 지속된 적대관계의 극적인 전환을 동시에 발표했다. 양국 정부는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수감자 문제를 맞교환 방식으로 처리하고 외교관계의 정상화를 전격 선언했다. 1961년 1월 양국 관계가 단절된 뒤 태어난 오바마 대통령은 “수십년의 고립정책이 민주적이고 번성하며 안정적인 쿠바의 출현을 촉진하려는 미국의 지속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친형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게릴라 전사로 출발해 혁명정부의 요직을 거친 쿠바 혁명의 1세대 지도자 라울 카스트로는 봉쇄조치가 지속되는 상황이 속히 끝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 쿠바는 사실상 미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미국은 쿠바 관타나모만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고 쿠바 헌법을 수정해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1950년대 말까지 쿠바를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회복, 경제적 독립, 사회 정의를 내세워 친미 독재자를 축출한 뒤 1959년 1월 출범한 쿠바의 혁명정부는 이런 흐름을 뒤바꾸고자 했다.

쿠바의 농업개혁과 기간산업의 국유화 정책에 맞서 미국 정부는 금수(禁輸)조치와 해상 봉쇄, 단교, 반혁명 세력의 쿠바 침공 지원, 수백회에 이르는 피델 카스트로 암살 시도 등 일련의 강경책을 펼쳤다. 반면 1962년 1월 미주기구에서 축출된 쿠바는 소련에 더 의존했다. 1962년 10월 소련의 미사일이 배치돼 핵전쟁 일보직전의 위기에 내몰렸던 쿠바는 미-소 냉전 대립의 단층선이 되었고 소련 몰락 후에도 냉전의 굴레에 묶여 있었다.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적성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1990년대에 더 강화되었다.

1962년 4월 민주당 상원의원 제임스 W 풀브라이트는 카스트로 정권을 가리켜 “미국의 몸에 박힌 하나의 가시일 뿐이지 심장에 겨누어진 대검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보수 강경파는 국가안보를 강조하면서 ‘뒷마당’에 있는 적대세력의 위협을 과장해왔다. 또 1959년 이래 쿠바를 떠난 이들은 미국 플로리다에 정착촌을 만들어 ‘장거리 내전’을 지속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 출신은 200만명(70%가 마이애미를 비롯한 플로리다에 거주)에 이르며 55%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

그동안 협상을 통한 해결책이 꾸준히 선호되었고 미국인의 70%가 쿠바 경제봉쇄에 반대했으며 유엔총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늘었다. 또 쿠바계 미국인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비율이 늘면서 예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쿠바계 미국인 중 65세 이상은 41%가 외교관계의 재개에 찬성하는 반면, 18~29세는 찬성률이 88%에 이른다. 향후 쿠바의 자유화가 좀 더 진전되고 망명자들의 보복 욕구도 약해지면서 언젠가 모두 장거리 내전을 끝낼 방법을 모색하게 되리라 예견되는 가운데 이런 역사적인 정상화 조치가 발표된 것이다.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미국 내 쿠바인 수감자의 송환 소식을 들은 쿠바 아바나 시민들이 17일(현지시간) 두 팔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_ 로이터


이제껏 쿠바를 향한 미국의 포용정책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이 전환은 작년 초부터 캐나다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 아래) 바티칸에서 진행된 비밀회담의 성과로 알려졌고 오바마 행정부의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이 전환을 ‘미국의 패배 인정’으로 여기는 쿠바계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와 공화당 의원들의 공세를 비롯해 ‘불량 국가 쿠바의 잔혹한 독재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배신’이라고 비난하는 보수적 여론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전환은 라울 카스트로가 지적한 대로 양국 간에 존재하는 큰 차이를 인정하는 첫걸음일 수밖에 없다. 미국인과 쿠바인들의 마음속에 어렵사리 빛이 생겼을 뿐이다. 덧붙여 소련 해체 뒤 ‘특별시기’의 내핍생활을 버텨낸 쿠바인들의 생존력과 분투, 그 와중에 전 세계인에게 전해준 낙천성에 경의를 표하며 냉전 구도 속에서 왜곡된 쿠바 혁명의 길이 좀 더 공정한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란다.


박구병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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