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일본에서 중의원 선거가 있었다. 예상대로 자민당이 중의원의 모든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반수가 넘는 위원을 확보할 수 있는 291석이란 절대적 안정 의석을 획득하였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의석까지 합하면 전체 의석 475석 가운데 326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한국과 중국 측이 가장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개헌할 수 있는 317석을 넘어선 것이다.

반면에 자민당을 견제해야 할 제1야당 민주당의 성적표는 정말 초라하다. 당대표가 선거에서 탈락하고,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지역구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에게 져 비례대표로 겨우 의원 자격을 유지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과반수를 밑도는 사람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데 그쳐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조차 없었다. 194곳에서 ‘유신의 당’과 후보를 단일화하여 부족한 능력을 만회하려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번 총선은 일본의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양당제가 무너지고, 1강(强)의 자민당을 중심으로 연립여당의 독주체제가 거의 완비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연립여당의 의석이 3분의 2를 넘는다면 아베 정권의 독주체제는 완비된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이때 국회에서 헌법을 개정하려 시도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총선거가 끝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이 자신의 큰 목표이자 신념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그래서 2015년은 평화헌법을 개악하기 위한 터 잡기의 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베 정권은 안보보장법제를 정비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해 왔던 아베 정권은, 이미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진실을 훼손하였다. 그 다음 순서는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의 훼손이다. 아베 담화는 이 연장선상에서 나올 예정이다.

서경덕 교수가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에 배포한 영상 광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화 캐릭터로 등장,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성 노예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중상이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15년은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이 해방되고 일본이 패전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도 뜻깊어야 할 2015년이지만, 한국으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경계의 눈초리를 일본에 보내야 하는 해가 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아베 정권의 정치 일정을 무산시킬 만큼의 외교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일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원만하지 못하다. 역사문제가 ‘100 대 0’ 아니면 ‘0 대 100’이어야만 풀릴 것 같은 상황이 이를 상징한다.

현실은 한국 정부로 하여금 양국 정상의 만남이 한·일관계를 더 진전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도 정상 간의 만남을 이벤트 수준에 그쳐도 부담이 없다. 아베 정권을 떠받쳐 주고 있는 세력이 한·일관계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막힌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한·일관계를 들여다보면 두 나라 정상 간의 회담만 없을 뿐, 장관을 비롯해 관계자들 사이의 대화는 중단되지 않고 있다. 역사문제가 두 나라 사이의 자유여행을 가로막고 있지도 않다. 역사와 경제도 분리되어 있어 양국 간의 교류와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한·미·일에는 중국과 북한을 상대해야 하므로 3국의 동맹을 강조하며 정상회담 개최가 한·일관계의 회복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종합적인 안보는 도외시한 채 국방 분야의 안보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려 한다. 최근에 미국 정부조차 내년도 주요 외교정책의 하나로 한·일관계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한·일간 역사문제는 학문의 영역을 넘어 외교문제화해 있다. 2015년에 한국이 주변 상황에 이끌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주체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그 여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서부터 마련해 가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옹색한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 오히려 두 강대국의 공통분모를 모아내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로워진 외교는 국방과 역사문제를 연계시켜 한국 외교를 더 폭넓게 확장할 수 있다. 2015년 초까지 그 전환점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신주백 | 연세대 HK 연구교수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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