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한국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굵직한 일들이 벌어졌던 해이다. 신년 벽두에 베를린에서 날아온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양자접촉 소식은 ‘파란의 1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양측은 이 접촉으로 꽉 막혔던 협상 재개의 물꼬를 텄다. 이어 ‘2·13 합의’가 나오면서 북핵 문제는 급진전됐다. 3월에는 김 부상이 뉴욕을 방문해 미국과 관계정상화 논의를 시작했다. 북한은 6월에 북핵 시설 불능화 작업을 모니터링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단 방북을 수용했고, 7월에는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했다. 북한은 연내에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신고서를 제출하기로 했으며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 시기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2007년 한 해에만 4번의 6자회담이 열렸고 비핵화, 경제·에너지 지원, 관계정상화,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구축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그룹회의는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곧이어 북한이 핵신고서를 제출하고 검증·폐기에 착수하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의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일어났다. 이 문제를 거론하려면 북핵 문제의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던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그해 10월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이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식 차이 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비핵화에 발맞춰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기반을 놓으려 했다. 이를 위해 추진한 것이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문제는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비밀리에 추진하면서 외교부에는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등 주변국들이 남북정상회담 추진 소식을 알게 되면 성사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한·미는 북핵 문제에 적극 공조하면서도 상대를 경계했다.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외부로 나가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편 송 총장은 이날 오전 총장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미국은 남북정상회담 소식에 매우 놀라면서 국제공조로 진행되는 비핵화 작업에 변수가 될 것을 우려했다. 중국은 남북정상선언에 포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의 종전선언’ 구상에 분노했다. ‘3자 또는 4자’라는 야릇한 문구는 중국을 배제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지만 미국과 중국의 축복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외교부는 이 같은 상황을 우려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공조가 필수인데 임기가 몇 달 남지도 않은 정부가 미·중이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남북정상회담을 기습적으로 가진 것이 국제공조를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하려고 하자 외교부는 더욱 난처해졌다. 불과 1년 전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인권결의안에 찬성했던 한국이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이유로 다시 기권하면 국제사회로부터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이 국내정치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당시 송 전 장관이 ‘장관직을 걸고’ 대통령에게 저항한 배경에는 이 같은 상황이 있었다. 회고록에는 그 내용이 비교적 소상히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노력을 조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남북관계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과 전략적 유연성을 갖는 것 중 어떤 것이 우선적인 가치인지 등을 생각한다면 ‘글의 요지’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오자마자 당시 새누리당과 보수층은 유력 야당 대선후보를 흠집낼 거리가 있는지부터 찾았다. 그러곤 “인권결의안 표결 문제를 북한에 결재를 받아 처리했다”는 저열한 ‘색깔론’을 집어들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그동안 보수 정치세력이 그에게 씌워온 지긋지긋한 ‘종북 프레임’에 위축돼 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사안은 정공법으로 대처했어야 한다. 외교 카운터파트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당시에는 무수히 열려 있는 남북채널로 긴밀한 대화가 오가던 시절이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당당히 맞서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다.

 

송민순 회고록에서 제기된 남북관계와 비핵화 논의의 선순환, 남북관계 접근법에 대한 딜레마 등은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서 북핵 문제를 다루더라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비핵화를 논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피할 길은 없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공방을 보고 있으면 다음 정부에도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한 한 별로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