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모두 속전속결로 성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 전에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트럼프 특유의 쾌도난마다. 정 실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한 뒤 북·미가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를 수용했다.

 

동석했던 트럼프 외교·국방 참모들 중 일부는 ‘괴짜 트럼프’의 도발적 결정에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보도가 됐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홍해바다를 가르듯 정상회담이라는 수로(水路)를 틀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용의주도하게 ‘거사’를 도모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트럼프 행정부와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용히 북한 비핵화의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작년 4월 한반도 위기설의 여진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념이 있었다. 미국의 고질적 대북 불신과 무관심 구조 속에서 김정은의 진의가 트럼프에게 전달되는 데 왜곡이 있을 수 있음을 간파,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자임했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워싱턴을 자극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관심을 끌어당기려면 핵 비확산체제를 흔듦과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완성’이 어쨌거나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위협을 느낀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는 군사적 방법을 통해 ‘체제변화 또는 붕괴’가 긴요하다고 판단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은 따라서 시간의 문제로 점차 인식되기 시작했다. 체제생존의 위협을 느낀 김정은은 발 빠르게 남한을 통한 적극적인 평화 공세(또는 ‘갈등적 편승 전략’)로 선회했다.

 

셋째, 국제사회의 계속되는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의 체제 내구성이 상당히 약화됐다. 한때 ‘사회주의 진영의 동방초소’로 불리기도 했던 북한으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때마침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체면도 구기지 않고 대화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셈이다. 한국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김여정이 올라섰다. 매파의 시각으로 보면 ‘불량국가’의 일시적 신분 세탁이다.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는 일본 외무상의 평가처럼 정상회담 개최는 분명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업적이다.

 

넷째, 문재인 정부의 영리한 대미외교가 주효했다. 한국의 공(功)은 최대한 낮추고, 대신에 잘 다듬어진 언어로 트럼프의 지도력을 한껏 치켜세운 외교술이 빛을 발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꼭 여기에 해당됐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사실상 설계자인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정의용 안보실장과 함께 미국으로 보낸 것은 동맹국에 대해 최대의 예우를 표한다는 의미 이외에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데 생길 수 있는 ‘해석의 구멍’을 메우는 한 수였다.

 

그렇다고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이 꽃으로만 장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전·적대국 관계인 북·미, 남북 사이에 지뢰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회의에서 “앞으로 두 달 사이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결과도 낙관하기가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화로 포장된 길이 낭떠러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문 대통령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변이 없는 한 북·미 정상은 역사적 회담을 하게 된다. 김일성-김정일 때부터 자주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떡하든 미국에 접근하려고 했던 북한이었다. 궁핍한 자원 동원을 극대화하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해 온 김정은으로서는 트럼프를 마주하는 일이 대미외교의 백미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못다 한 꿈을 김정은이 이루는 셈이다. 결국은 미국이 일련의 정상회담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강(自强)과 균세(均勢)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협상가’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