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과거사를 언급했지만, 진솔한 사죄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영어로 한 연설에서 “전후에 우리는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의 느낌을 갖고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깊은 반성’은 일본어 연설문에서 ‘통절한 반성’으로 표현됐다. 그가 진정 사죄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이렇게 이중표현을 구사하는 기교를 부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우리 행동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된다”는 추상적인 말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국을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하며 수많은 사람의 인권, 생존권을 빼앗은 행위는 결코 ‘우리 행동’이라는 모호한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준은 이미 제시되었다. 식민지 지배, 침략, 사죄, 위안부 동원 인정이라는 네 개의 용어를 쓰느냐 안 쓰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교묘한 어법을 구사하는 것도 바로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치밀한 전략적 고려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과거 총리들이 내놓은 견해들을 유지할 것”이라며 무라야마 담화 계승 입장을 밝혔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그는 얼마 전 비동맹 운동을 태동시킨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 때의 과거사 발언과 이번 연설을 통해 과거사 청산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이미 드러낸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27일(현지시간) 부인 아키에 여사(왼쪽에서 두번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미국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묵념하고 있다. _ AP연합


그는 일본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서든 미군을 따라 후방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미국에 협조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과거사 사면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 의회의 환대를 통해 드러난 미·일 간 밀월이 미국으로부터 보통국가 일본을 승인받은 증거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당사국인 한국, 중국과 만나서 풀어야 할 문제다. 미국은 한·중의 동의 없이 일본을 사면할 자격이 없다.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강화되는 미·일 동맹은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일은 잊어서는 안된다.

아베 총리는 8월 아베 담화를 발표한다. 그의 미 의회 연설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의 반응은 물론 세계 여론이 일본의 과거사 회피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그가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한·중을 상대로 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놓고 미국과 타협하는 건 변칙이다. 당당하게 과거사의 진실과 마주한 채 진지한 고백을 하지 않는 어떤 방식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부디 8월이 동아시아에 평화와 협력의 새 기운이 솟아나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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