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전격 연기한 데 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비판하며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를 거론하며 반발하자 미국이 진화에 나섰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리비아 모델이 미국의 공식 방침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것이 우리가 적용 중인 모델인지 알지 못한다”면서 “정해진 틀은 없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델”이라고 했다. ‘트럼프 모델’이라는 언급은 과거의 특정한 비핵화 방식을 답습하는 대신 북한의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비핵화 방식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북한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고, 상황을 추스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17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미 정상회담이 상호존중의 정신하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미, 남북 간 여러 채널을 통해 긴밀히 입장을 조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호존중의 정신’은 이 시점에서 북·미 양측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방북한 정의용 안보실장 등 특사단에 북·미대화에 나서는 조건으로 “대화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상호존중의 자세로 대화하자는 뜻이다. 사실 국가 간의 외교는 상호존중의 정신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덕목에 비춰볼 때 트럼프 행정부 일부 관리들의 최근 대북 발언이 상대방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수준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 반출 및 미국 이송을 거론하고, 북한이 줄곧 반대의사를 밝혀온 ‘리비아식 해법’을 가이드라인인 양 제시하며 굴복을 강요하는 듯한 언행을 했다. 역사적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시기라는 점은 안중에도 없고,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듯한, 오만방자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체제안전 보장 약속이 ‘불가역적인’ 것인지를 가장 우려한다. 그런 북한에 무조건 완전 폐기만을 요구하며 정권 붕괴로 이어진 리비아 모델을 꺼내드는 볼턴의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협상을 앞두고 기싸움을 벌일 수는 있다. 하지만 기싸움이 상궤를 벗어나 협상 상대에게 불안이나 모멸감을 준다면 판 자체를 깰 수도 있다. 백악관 대변인이 거론한 ‘트럼프 모델’이 어떤 방식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트럼프 모델에는 상호존중의 가치가 담길 것으로 기대한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