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의 영화관 AMC를 찾았다. <블랙팬서> 개봉 이틀째였다. 극장 입구부터 꽤 긴 줄이 있었다. 흑인 관객들이 유난히 많았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감격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여운을 즐기는 관객들도 많았다. 큰 극장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은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도 밖으로 나오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먼 곳까지 찾아가 <1987>을 본 후 감정의 정리가 어려웠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블랙 팬서> 포스터.

최근 미국에서 <블랙팬서>가 열풍이다.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 와칸다를 배경으로 하는 흑인 히어로 영화다. 흑인 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도 시드니 포이티어가 살인사건 전문 형사로 열연한 <밤의 열기 속으로>가 흑인들을 극장으로 몰려들게 했다. 하지만 이번 바람은 다르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블랙팬서>는 미국 흑인 문화사의 분기점이 될 작품이란 평가도 나온다.

 

여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는 미시시피의 극장을 통째로 빌려 어린이들에게 단체관람을 시키고 있다. 사업가 로저 잭슨은 시카고에서 극장을 대여했다. 교회와 사업가, 시민운동가들도 단체관람을 진행 중이다. 애틀랜타 교외의 한 AMC에서는 개봉 당일 이 영화만 총 84회 상영됐다. 극장의 모든 스크린에 <블랙팬서>만 비춘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흑인 74%가 이 영화를 볼 계획이라고 답했다. 온라인에서는 ‘블랙팬서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해시태그가 유행이다. 각종 흥행기록도 갈아치울 기세다.

 

<블랙팬서>는 미국 흑인들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영화인 듯하다. 19세 흑인 고등학생 오스틴 매시야는 CNN에서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견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블랙팬서>는 그 수준에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블랙팬서> 팀을 격려하고 “당신들 덕분에 젊은이들이 마침내 극장에서 자신과 닮은 영웅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이 영화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영웅이 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와칸다는 아프리카의 에덴동산 같은 곳이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한 와칸다의 초원에서는 코뿔소와 스텔스 우주비행선이 공존한다.

 

블랙팬서라는 이름은 미국 흑인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1942년 구성된 흑인들만의 탱크부대가 사용한 별명이 바로 블랙팬서였다. 1966년에는 앨라배마의 유권자운동 단체가 상징으로 블랙팬서를 채택했고, 같은 해 오클랜드에서 경찰폭력 등 백인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 ‘블랙팬서당’이었다. 이들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비폭력 운동을 실패로 평가하고 주거, 교육, 시민권의 평등을 위한 혁명전쟁을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블랙팬서>는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운동이란 주장도 들린다. 언론인 자밀 스미스는 타임지 기고에서 “백인 이민배척주의자 운동에 의해 추동된 문화적, 정치적 퇴행의 한가운데에서 <블랙팬서>의 존재는 일종의 저항과도 같다”고 적었다. 다양성의 존중이 마치 자선인 것처럼 비치는 현실에서 <블랙팬서> 같은 영화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흑인들은 자부심을 일깨우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뒤틀린 세상에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블랙팬서>는 미국에 정착한 흑인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비현실적인 동경을 담았다는 지적도 있는 게 현실이다. 영화 관람 말고도 수많은 저항의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장 흑인들의 대선 투표율은 오바마를 당선시킨 2012년에는 66.6%였지만, 2016년에는 59.6%로 떨어졌고 백인 우월주의자를 옹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