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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외교 이벤트가 열린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이를 토대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나온다면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구축, 남북 평화공존의 출발이 될 것이다. 실패하면 전쟁의 위기가 이전보다 짙게 드리워질 수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지금의 갑작스러운 정세변화의 원동력이 북한의 달라진 태도였던 것처럼, 앞으로 전개될 일들의 성패 역시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제재를 피하고 핵무기를 실전배치하기 위한 시간벌기라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고 이번에야말로 북한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6일 정부의 대북 특별사절단에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핵포기와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를 맞바꾸자는 제안이다. 북한의 진정성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단서는 앞으로 벌어질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로 한·미에 무엇을 요구하는지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체제안전보장 조치에 대해 명시적이고 일관되게 밝힌 적이 없다. 우리에게 낯익은 ‘대북 적대시정책 철폐’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북한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체제안전보장은 평화협정 체결이나 불가침 선언일 수도 있고 북·미 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 철폐,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나 완전 철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는 당사자인 북한도 잘 모른다. 북핵 협상에서 일괄타결식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북한에 딱히 뭐가 필요한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바꾸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한·미의 고민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의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면, 북한의 고민은 체제안전을 어떻게 보장받을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북한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것인지가 대화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이른바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요구를 한다면 진지한 협상의 기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우산 철폐나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 등을 들고 나올 경우 한·미는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체제안전을 위한 조치는 외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 붕괴는 주로 정통성이 무너질 때 발생한다.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이 더 크다. 흔히 북한과 비교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나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도 본질은 핵무기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당시 구소련이 남겨놓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는 독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정권이 붕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은 형용모순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민중봉기로 붕괴하자 러시아가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무력개입했으며 우크라이나가 독립 당시 미·러 등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영토와 안전을 보장받은 ‘부다페스트 협약’이 결국 휴지조각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에 주는 시사점은 독재정권이 민중봉기로 붕괴했다는 점, 확실한 담보가 없는 다자안보조약은 무용지물이므로 견고한 장치의 동북아 다자안보체제가 필요하다는 점 등이지, 핵포기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것도 나토와 미국의 공습 이전에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민중혁명이 직접 원인이다. 설사 우크라이나와 리비아가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내부에서 촉발된 정권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미가 제공할 수 있는 안전보장조치는 북한 체제안전에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체제유지에 필요한 외부환경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북한 통치체제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오히려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려면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비핵화와 그에 따른 주변 강대국의 안전보장 외에 비현실적이고 기형적인 통치체제와 인권 문제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해 나가는 내부 개혁조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