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 서쪽 끝에 위치한 나라 서사하라가 최근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달 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알제리 남서부의 스마라 난민촌을 방문하면서다. 이 난민촌은 1975년 모로코가 서사하라의 북부와 서부 지역을 차지하면서 쫓겨난 사흐라위족을 40여년간 수용하고 있다. 반 총장은 이곳에서 난민의 귀환을 위해 서사하라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모로코가 서사하라를 ‘점령(occupation)’하고 있다는 단어를 사용했다. 또 서사하라 분리주의 무장세력 폴리사리오 해방전선 지도자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반 총장은 서사하라 미래를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서사하라 분쟁의 주요 당사자인 모로코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우선 ‘점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반 총장을 강하게 비난했다. 지난 13일에는 수도 라바트에서 수백만명이 참가한 유엔 규탄 시위도 열렸다. “반기문은 중립성을 잃었다” 등의 손팻말도 등장했다. 이에 반 총장은 시위에 대해 “유엔과 유엔사무총장 개인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모로코 정부는 17일 서사하라에 파견된 ‘유엔 서사하라 주민투표 지원단(MINURSO)’의 철수를 요구했다. 유엔과 모로코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미국, 프랑스 등이 중재를 서두르고 있다.

반 총장의 적극적인 행보와 모로코 반발의 배경에는 장기화한 서사하라 분쟁이 있다. 서사하라는 19세기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1975년 프랑코의 사망과 독재체제가 막 내리자 스페인은 이듬해 특별한 경제적 가치가 없는 서사하라에서 서둘러 완전 철수했다. 문제는 관할권을 주변국인 모로코와 모리타니에 이양했다는 데 있다. 독립된 국가와 정부를 구성해주지 못한 것이었다. 이에 폴리사리오 해방전선이 1976년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모로코와 모리타니에 대한 게릴라 전쟁을 시작했다. 정규군이 3000명에 불과했던 모리타니는 1978년 폴리사리오와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영유권을 포기했다.

 스페인령 멜리야의 국경 철조망 위에 앉아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_AP연합뉴스

그러나 모로코는 북부와 대서양 연안지역을 포함해 서사하라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 모로코는 민족 구성과 언어에 있어 서사하라가 모로코 남부의 한 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 철수 이전 서사하라를 자국 영토의 일부라며 ‘식민지 반환’을 공식 제기하기도 했다.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간 게릴라전과 난민 발생이 지속되자 유엔의 중재가 수년간 이어졌다. 1988년 양측은 유엔평화안을 수용하고 1991년 이후 유엔서사하라총선지원단이 파견돼 있다. 하지만 독립 혹은 모로코로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투표 실시는 수십년째 표류하고 있다.

스마라 난민촌에서 반 총장이 언급한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폴리사리오의 무장활동, 모로코의 소극적 태도, 국제사회의 무관심으로 표류하고 있는 주민투표를 추진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난민사태와 평화 정착을 위한 근본적 해결안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모로코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반 총장이 폴리사리오의 본부가 있는 알제리 남서부 난민촌을 방문하고, 폴리사리오 지도자를 만나고, 모로코의 지배를 ‘점령’이라고 언급했으니 말이다.

모로코의 반발에도 반 총장이 스마라 난민촌을 방문한 이유가 있다. 서사하라 사태가 ‘평화도 아니고 전쟁도 아닌 상태’로 수십년간 방치된 배경에는 국제적인 무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서사하라는 한반도보다 크지만 인구가 약 60만명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사막국가다. 몇 개의 오아시스에만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국토의 0.02%만이 경작 가능한 땅이다. 그나마 대서양을 끼고 있어 어업이 일부 발달해 있다. 국제적 무관심으로 서사하라는 아직도 공식적으로 자치가 없는 ‘식민 상태’에 있는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다. 이번 일로 서사하라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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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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