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이 끔찍한 점이 많기는 해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유일하게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특히 그들은 전쟁이나 전쟁 위협을 통해서만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서양 역사에서 그 좋은 예는 팍스로마나(로마제국에 의한 평화)가 될 것이다. 로마의 지배는 신민들이 반항하려 할 때마다 로마 군대에 의해 진압됐다는 점에서 일종의 ‘평화’를 만든 것이 사실이다. 반란군 지도자 중 한 명이 말했듯 “그들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현대에는 어떤 전쟁이 평화를 가져왔는가. 연합국들의 관점에서 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종식하는 전쟁”으로 선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치즘과 2차 세계대전을 낳았다. 2차대전은 냉전을 불렀고, 냉전은 다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가져왔다. 즉 전쟁은 더 많은 전쟁을 낳는다. 미국의 첫번째 이라크전쟁은 2차 이라크전으로 이어졌고, 최근 신문에 보도되듯이 그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전쟁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과 전쟁 정책은 스스로 적을 만들어낸다.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자로 권력을 장악했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독재자가 됐다. 그는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하고 나서야 권좌에서 끌려내려왔다. 알카에다 역시 CIA의 지원과 훈련을 받아 설립돼 소련을 아프간에서 몰아내는 데 쓰였다.

미국은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이란 침공을 수십억달러의 경제원조, 무기·기술 지원 등으로 지지했지만 결국 20년 뒤 후세인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더 쓰고 수많은 생명을 죽여야 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가 1984년 후세인과 악수하는 유명한 사진이 남아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는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1945년 이후 군사 행동을 하지 않은 일본은 예외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의 상대적 평화는 전쟁에 이겨서가 아니라 져서 누리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은 일본 정치 엘리트들의 결정이 아니라 전시 세대의 집단적 결정의 결과물이었다. 오늘날 그 세대가 나이 들고 점점 줄어들면서 전쟁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로 이뤄진 일본 정부는 상대적 평화의 시대의 막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오키나와 거주 미국인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씨가 작년 3월 서울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앞에서 열린 '이라크 침공 10년, 미국은 전쟁범죄를 사죄하라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최근 몇년간 전쟁은 좀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뭔가 폭력적이지만 엄밀히 말해 전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을 말이다. 이 변화는 1937년 독일의 보수적인 정치이론가 칼 슈미트가 예견한 것이다. 슈미트는 국제연맹이 진정한 세계정부가 되고 전쟁이 불법화되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인기 있는 생각에 반대했다. 그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의 논증은 따라가볼 가치가 있다. 그는 세계정부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썼다. 세계정부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폭력의 권리를 독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정부에 대항하는 어떠한 반군도 불법으로 규정될 것이고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범죄자로 여겨질 것이다. 그 시스템 안에서 전쟁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충돌은 정의 아니면 불의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고(고로 전쟁이 아니고) 이 경우 불의는 단지 범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전쟁은 일종의 존엄성이라도 있다. 왜냐하면 전쟁은 “상대가 해적이나 폭력배가 아닌 ‘국가’, ‘국제법의 주체’라는 점에서 정의와 명예와 가치를 찾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정부하에서는 “더 이상 전쟁은 없고, 오로지 처형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은 세계를 통치할 능력이 결코 없다. 하지만 미국은 점점 더 그렇게 행세하고 있고, 슈미트가 예견한 세계정부의 견해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적들은 체포되더라도 전쟁포로의 권리를 가진 군인으로 인식되지 않고 범죄자, 즉 슈미트의 ‘해적’이나 ‘폭력배’는 아니더라도 ‘테러리스트’, ‘불법 전투원’으로 인식된다. 미국 무인 전투기의 조종사들은 미국 본토 기지의 책상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버튼을 누르고 처형을 수행할 뿐이다.

이렇듯 팍스아메리카나(미국 제국에 의한 평화)하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전쟁’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평화’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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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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