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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늘 추수감사절 요리에 쓸 야채를 씻는데 한 번 씻을 때마다 생수 4병을 썼다. 그렇게 3번을 씻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난 21일,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탈리아 부퍼드 기자는 이런 트윗을 올렸다. 부퍼드의 고향은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플린트다. 지난해 이맘때 플린트 주민 멜리사 메이스도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식구들이 모여 앉은 식탁을 배경으로 작은 화이트보드에 추수감사절 요리를 하면서 쓴 생수 58병의 내역이 적혀 있다. 칠면조 해동하고 소금물에 담그기: 생수 33병, 칠면조 헹구기: 3병, 야채 씻기: 6병, 으깬 감자 요리: 6병…. 메이스는 지난 22일 온라인 매체 쿼츠에 “올해도 생수병을 따다 손에 물집이 잡혔다”고 말했다.

 

플린트에서는 수돗물이 납에 오염돼 먹지 못한 지 30일로 790일이 된다. 병에 든 생수로 살아온 지 3년째지만 추수감사절 요리는 플린트의 불합리를 더욱 아프게 드러낸다. 지나 러스터는 7살 딸을 목욕시킬 때 딸아이와 ‘생수로 욕조 채우기’ 게임을 한다. 30분이 걸린다. 러스터네 네 식구의 하루에는 생수 150병이 든다. 그가 수돗물을 쓰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변기 물을 내릴 때.

 

그런데도 주민들에게는 매달 먹지도 못하는 물에 200달러가 넘는 돈을 내라고 청구서가 날아온다. 2010년대 들어 시 재정이 악화되면서 플린트의 수도요금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환경보건 단체 푸드앤드워터워치가 지난해 2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전해 1월 기준 플린트의 가구당 연간 수도요금은 864.32달러로 전국 500개 도시 중 가장 비쌌고 전국 평균 요금의 거의 3배였다.

 

플린트는 전체 인구 9만7000여명 중 흑인이 57%이며 전체 인구의 42%가 빈곤층이다. 플린트가 고향인 마이클 무어 감독은 “공화당 소속 릭 스나이더 주지사가 2011년 취임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였다. 세수가 줄자 학교, 연금, 식수 안전 등 공공 예산을 깎았다”고 비판했다.

 

플린트시는 디트로이트의 상수관을 이용해 깨끗한 휴론 호수의 물을 사서 쓰다가 재정난이 심해지자 2014년 4월25일 가까운 플린트강으로 상수원을 바꿨다. 이때부터 수돗물이 누렇게 변하고 악취가 났다. 플린트는 1908년 제너럴모터스(GM)가 설립된 곳이다. GM 공장은 번영을 가져다줬지만 플린트강은 ‘GM의 하수구’로 불렸다. 강물은 깨끗하지 않았고 낡은 상수도관은 부식돼 있었다. 주정부는 돈이 없다고 약품 처리도 하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납에 오염된 수돗물이 나왔지만 주정부는 “안전하다”고 무시하다가 이듬해 10월에야 수돗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그사이 수많은 아이들이 납에 중독되고 레지오넬라병으로 주민 12명이 숨졌다.

 

플린트 사태로 전국이 들끓었다. 정부가 움직이고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해결은 더뎠다. “제때 보고를 안 했다” “몰랐다”는 공무원들의 변명이 반복되고 성난 주민들은 시·주·연방정부를 상대로 10여건의 집단 소송을 걸었다. 지난 3월에야 환경보호국(EPA)은 플린트 상수도 시설 개선에 1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정부는 플린트의 오염된 상수도관 1만8000개를 교체하는 데 동의했다. 지난 6월까지 시 공무원 15명이 과실치사로 기소됐다. 지난 21일 플린트 시의회는 주정부 산하 수도청에서 30년 동안 상수원을 공급받는 합의안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지금 당국이 물을 여과해 납 성분은 안전한 수준까지 낮췄다고 하지만 누구도 수돗물에 손대지 않는다. 시 재정과 주민의 건강을 바꾼 결정은 다시 심각한 불신과 절망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상수도관이 모두 바뀌는 2020년이면 마음이 좀 놓이고 생수병을 따는 수고로움이 덜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플린트에 사는 한 우리는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는 마음의 상처는 치료될 것 같지 않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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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