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드시라요. ‘살이 미(美)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네까.” “아! 그런 말이 있어요? 저는 여기서 살아야 할까 봐요.”

같은 테이블에 앉은 그 여성은 다정하게 말하며 앞에 놓인 음식을 내 접시에 덜어줬다. 그 말 덕분인지 모든 음식이 담백하고 맛있게 느껴졌다.

지난달 종교인 행사에 금강산으로 동행 취재를 갔다. 7개 종단 수장들이 만든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4년 만에 북한 측 4개 종단 수장과의 만남을 성사시켜 금강산에서 행사가 열렸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종교인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1박2일간 남북 종교인들이 선언문 발표와 종단별 모임, 금강산 등반 등을 함께했다. 남측에서 150여명이 갔고, 평양에서 40여명이 왔다. 첫 남북 만찬은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 열렸다.

만찬 식탁 배정표에는 ‘15탁’(15번 테이블)이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으로 북측 사람과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부담도 됐다. 전날 통일부의 방북 교육 때 ‘북측’ ‘남측’으로 지칭하고 ‘봉사원 동무’ ‘김 선생, 박 선생’ 등으로 불러야 한다고 해 신경쓰였다. 더욱이 민감한 질문은 조심해야 했다. 만찬장 25개의 테이블에 8명씩 앉았다. 그중 2명이 북측 사람이었다. 선언문을 채택하고 발표하는 동안 양측 모두 경직된 표정이 역력했다. 만찬 역시 서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만찬장은 얼마 가지 않아 시끌벅적해졌다. 테이블마다 경쟁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통일’을 외치며 건배하기 바빴다. 우리 테이블도 질세라 건배사 ‘통일을 위하여’를 합창했다. 그러곤 ‘통일이 되면…’ 하는 식으로 ‘좋은 말’만 이어졌다. 사실 북측의 종교활동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조금은 못 미덥기도 했다. 말을 할수록 공허해지고 나를 포함해 모두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까지 억지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 회의가 들었다.


남북 노동자 연합팀 축구선수들이 북한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다_AP연합뉴스


다음날. 두번째이자 마지막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테이블 배정이 바뀌기를 바랐다. 이야깃거리도 없는데 불편하게 어제의 얼굴들과 또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두번째 식사 역시 ‘15탁’이었다. ‘준비팀들, 정말 융통성도 없네!’ 속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15탁에 가니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그 북측 여성이 앉아 있었다. 파마머리에 짙은 눈썹과 쌍꺼풀진 큰 눈, 분홍빛 도는 피부가 더 예뻐 보였다. 벨벳에 문양이 들어가 있는 흰색 치마저고리는 어제보다 더 정다웠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30대 중반인 그 여성은 대여섯살 난 아이가 있다고 했다. 엄마가 1박2일간 금강산에 와 있으니 누가 돌볼까 궁금했다. 24시간 탁아시설이 잘돼 있어 아무 걱정 없단다. 그 여성은 우리 테이블에 음식대접이 소홀할까봐, 봉사원 동무에게 눈짓을 하며 애를 썼다. “살이 쪄서 걱정”이라는 나의 말에는 “살이 미”라는 덕담까지 해줬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두 끼를 같이하고 나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든 것이다. 밥상을 함께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짧은 시간 마음의 변화에 스스로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이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어제의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밥 먹고, 얘기 나누며 점점 옅어가는 ‘한 식구의 정’을 되찾기 위한 뜨거운 정성들이었던 것이다. 종교인들이 나서는 것도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지난 11~12일 개성공단 차관급 남북 당국회담 이후 후속 회담이 불투명해졌다. 정부는 원칙을 내세울 뿐 각별한 정성을 쏟지 않는 분위기다. 통일로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찌 됐든 더 많은 남측·북측 사람이, 더 자주 만나 따뜻한 밥상을 마주해야 한다. 15탁 그녀와도 재회하고 싶다.


김희연 문화부 차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