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천황 방한설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그것도 일본이 아니라 교착상태에 있는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초대형 카드로 정부·여당의 지일파들이 물밑에서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몇 차례 “천황의 방한이 실현되면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큰 계기가 된다고 평가”했다. 이수훈 주일대사도 천황 방한에 대해 “한·일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라고 기대한다.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일 이래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일본 천황 방한을 한·일 간의 현안을 해결하는 특효약처럼 매달려 왔지만, 천황의 방한이 정말 한·일 간의 현안을 해결하는 특효약이 될 수 있을까?

 

조선이 천황 개인의 소유물이었던 일제하에서도, 해방 후에도 천황 방한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열화와 같은 민족적 저항이 있어 조선에 왔다가는 안전을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해방 후에도 천황에 대한 민족적 분노와 원한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측에서도 우익들이 천황이 위해나 수모를 당할까봐 방한에 반대해왔다. 거기에는 지엄한 천황이라는 신격화와 일본인의 반한·혐한 감정이 개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화한다면 천황 방한의 가능성은 한·일 간의 역사청산 수준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한·일 간 갈등의 근본원인은 일본의 한국병합조약이 적법하다는 일본 측의 인식에 있다. 식민지 지배, 피지배의 관계를 청산하고 주권국가로서 대등한 국교를 수립하고자 하는 취지의 한일조약에서 “병합조약은 이제 무효”라는 어구로 한국병합의 불법성을 호도하려 했다. 박정희 군사독재는 배상금도 보상금도 아닌 국교정상화 축의금으로 유·무상 5억달러를 받아 일본의 식민지 지배 범죄를 면책했다. 일본은 그렇게 부정·불의하게 만들어진 조약이 날개를 달자 그 후 반세기에 걸쳐 세상을 누비고 왔으며, 악질 고리업자처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너희가 도장 찍지 않았느냐”며 낡은 증서를 끄집어 낸다. 쓰러져가는 박근혜 정부가 민의의 수렴도, 합의문의 공개도, 국회의 비준도 없이 외교장관의 구두 발표로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12·28 합의와 그 구도가 똑같다.

 

그런데 촛불정권 들어서도 누가 봐도 부당한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외교적 합의라고 주장하는 아베 정부에 정면으로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하고, 무슨 TF를 만들어 검토하니 하면서, ‘합의’가 불법적이고, 문제의 봉쇄를 위한 것이라는 근본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무슨 ‘소통 부족’이니 하면서, 우리 국민의 눈치를 살피며 합의의 무효화와 재협상을 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역사문제니 인권문제보다 외교적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서 한·일 셔틀 정상회담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겠다.

 

한·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아베 정권의 행태이다. 아베는 일본제국주의의 범죄를 인정치 않고, 그 영광의 부활을 꿈꾸는 자로서 과거 청산에 대한 의지는 추호도 없고,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대한 민족적 우월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본 천황 방한을 추진하려는 지일파들의 심정과 논리는 무엇인가?

 

우선 일본 국민의 호감도가 80%를 넘는 천황이 방한한다면 혐한·반한에 찌든 일본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혐한·반한적 태도를 키우는 아베 정부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것이지 천황의 인기에 기대어 일본 사람들의 호감을 얻으려는 심산은 너무 저열하다.

 

‘지일파’ 정치인이나 한국 언론은 아키히토 천황을 ‘평화주의자’이며, ‘호헌파’라고 치켜세우고, 환상을 뿌리고 있다. 물론 아키히토가 교활한 아버지 히로히토보다 착할 수도 있으며, 성품도 야비한 아베보다 온화할 수 있다. 지난 10월, 1300여년 전 고구려에서 유래된 사이타마(埼玉)현의 고마(高麗)신사를 방문했으며, 2001년 기자회견에서 “나로서는 간무(桓武天皇)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데에, 한국하고의 인연을 느낍니다”라고 천황가의 뿌리에 대해서 언급한 점, 2019년 4월30일로 예정된 퇴위를 앞두고 방한을 못다 한 과업으로 유념하고 있다고 말한 점 등을 들어 아키히토가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흐뭇해하는 정치인·언론인도 많다. 아키히토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키나와, 태평양의 섬에까지 해마다 전쟁 희생자에 대한 위령 순례를 지속하면서, 일본 국민의 호감도를 높이고 있다. 1991년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과거사 사죄 순방을 한 바 있고, 1992년 10월23일 일본 천황 중 최초로 중국을 공식 방문해 “중국 국민에게 심대한 고난을 준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면서 중일전쟁 등 과거사를 사죄한 바 있다.

 

그러나 천황이 한반도의 핏줄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우쭐댈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희생자를 낸 천황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다. 천황이 위문 순례를 하는 것도 그 책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며, 제국시대에 천황이 자기의 위세와 인자함을 과시하기 위해 한센 병원이나 고아원, 고도·벽지를 순시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일본에서 평화문제나 헌법문제가 나올 때 어쩌다가 나오는 천황의 말 한마디에 여론이 요동친다는 점이다.

 

2006년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종전의날(8월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고 했을 때 아키히토는 천황의 시종인 도미타의 메모를 누설하여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것으로 고이즈미의 참배를 막지는 못했으나, 일본 여론에서 천황이 민주주의자고 평화주의자라는 호감도가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천황의 선정에 기대어 그 날개 밑에서 숨쉬는 일본의 평화나 민주주의를 ‘천황제 평화주의’니, ‘천황제 민주주의’니 하고 비꼬기도 한다.

천황은 수천만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범으로 단죄되어야 했음에도 미국의 패권전략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일본 헌법에서는 신의 지위에서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헌법 제1조)으로 내려왔고, “헌법에 정해진 일정한 국사행위(國事行爲) 이외 국정(國政)에 관한 권리의 주장과 행사는 불가하다”(동 제4조)라고 규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일본 천황은 은연중에 정치에 개입해왔다.

 

한·일 간의 적폐청산은 어디까지나 현안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훗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하물며 ‘천황제 한·일 화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지일파의 업적 만들기에 끌려서 천황 방한을 서둘러서는 안된다.

 

<서승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Posted by KHross